<사랑의 모진 운명>
영식과 경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차를 타자 경희는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영식은 마침 대치동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영식이 사실 대치동쪽으로 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별로 뚜렷한 방향 없이 서울을 방황하고 있었다.
차안에서는 계속해서 좋은 음악이 흘러나왔고, 낯선 이성끼리 좁은 공간에서 특별한 대화 없이 보내야 하는 시간에 적절한 분위기를 잡아 주었다. 사람 사이에 대화가 중단되면 불편하다.
그렇다고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은 성격상 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습관인데, 그래도 가만 있자니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식은 대낮에 밖에 있는 이유를 회사일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대치동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릴 때 경희는 고맙다고 했고, 나중에 차라도 대접하겠다고 지나가는 말로 인사를 했다.
그때 영식은 경희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두 사람은 헤어졌다. 서로가 다시 만난다는 것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차를 한번 태워줬다는 이유로 다시 만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두달 쯤 지나서 경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 번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차를 한잔 사겠다는 취지였다. 영식은 만사 제쳐놓고 경희를 만났다. 남자들은 집에서는 부인에게 따뜻하거나 자상하게 대하지 않아도 밖에서는 외간여자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성의를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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