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9)

 

경희는 식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4시간 하는 카페로 갔다. 혼자 앉아 커피를 시켰다. 지금 이 시간, 이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 상의를 해야 하나? 친정집에는 연락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실망할까? 지금까지 친정 부모는 경희가 결혼해서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였다. .

 

더군다나 친정에서는 결혼할 때에도 의사 사위를 얻기 위해 돈도 많이 들였다. 아파트도 전세를 얻어주었다. 자동차도 사주었다. 그리고 인턴과 레지던트를 하는 동안에는 생활비도 대주었다.

 

결혼식도 돈이 많이 들어가는 호텔에서 했다. 불과 몇 시간 동안 하는 예식비만 7천만원이나 들었다. 물론 축의금도 들어왔지만, 그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돈도 아깝고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대외적으로 체면을 살리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했다.

 

친정부모는 사위가 의사라고 늘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철수도 처갓집에 잘 했다. 경희와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처갓집 식구들에게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철수는 처음 결혼할 무렵에는 경희를 무척 좋아했다. 경희가 얼굴도 예뼜고, 미술을 전공해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경희 아버지가 재력이 튼튼한 사업가였기 때문에, 돈도 넉넉하게 대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한 다음, 6개월만에 터졌다. 경희가 결혼하기 전에 오래 사귀던 남자가 계속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고, 경희도 하는 수 없이 그 친구를 만났다. 그랬더니 그 남자 친구가 왜 자신을 버리고 능력 있는 의사와 결혼했느냐고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경희는 기가 막혔다. 당시 경희와 그 남자 친구는 1년 정도 사귀었는데, 그 친구가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직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군대를 가버렸다. 그리고 그 친구가 먼저 연락을 끊었다.

 

경희로서는 더 이상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경희도 그 친구를 포기했다. 그러면서 다른 남자들과 연애를 하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3년 정도 있다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선을 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신랑, 철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결혼 전 남자 친구가 경희가 결혼한 지 6개월만에 불쑥 나타나서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남자 친구는 경희의 과거를 철수에게 말하겠다고 협박했다.

 

어떻게 네가 그렇게 나를 배신하고 다른 놈과 결혼할 수 있어? 네가 낙태까지 했잖아? 그것도 내가 그렇게 반대했는데, 네가 혼자 낙태수술을 결정했던 거야. 지금 생각하니, 너는 나와 결혼할 생각도 전혀 없었는데, 그냥 나를 데리고 놀았던 거야. 그래 나는 지금 이렇게 비참하게 됐는데, 너 혼자 좋은 놈 만나서 행복하게 살면 다야! 그러면 내 인생을 뭐야?”

 

그러면서 그 남자 친구는 경희를 붙잡고 모텔로 끌고가서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이에 저항하는 경희를 때리기도 했다. 경희는 어쩔 수 없었다.

 

만일 그 남자 친구가 철수를 찾아가 과거를 폭로하고, 난리를 치면 철수와의 관계가 파탄에 이를 것 같았다. 철수는 결혼 전후에도 자신은 의대 공부가 힘이 들고, 인턴과 레지던트를 할 때도 너무 힘이 들어서 연애 한번 제대로 못했다고 늘 강조했다.

 

거짓말이었겠지만, 자신은 결혼하고, 신혼 여행 때, 경희와 처음으로 관계를 한 것이라고 늘 되풀이해서 중점을 두어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경희는 처음은 아닌 것 같다고, 의사로서 의학적 견지에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런 과거는 묻지 않겠다고 하는 말까지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일 그 정도가 지나쳐서 낙태까지 하고, 결혼까지 약속했던 옛애인이 나타나서 난리를 치는 날에는 철수가 그것까지 용납할 것 같지는 못했다. 그것이 경희가 당시 느낀 상황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남자 친구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그 남자 친구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성관계를 할 것을 요구했고, 경희에게 돈까지 요구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경희가 하는 수 없이 끌려다녔다. 그리고 돈도 천만원이나 친정부모에게서 얻어다가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남자 친구는 경희를 불러내서 모텔에서 성관계를 가진 다음, 섹스 동영상을 몰래 찍어놓았다. 그리고 경희가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그 동영상을 경희의 남편인 철수의 핸드폰으로 보내놓았던 것이다.

 

이걸 계기로 그 남자 친구는 경희와의 관계가 끝났지만, 경희는 철수에게 노예와 같은 존재로 추락하고 말았다. 철수는 대외적인 체면과 처갓집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냥 결혼관계는 유지했지만, 더 이상 경희를 믿지 못하고, 형식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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