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1)

 

경희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아프고,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여자 같았다. 경희는 남편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보았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수십번이나 되풀이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전화를 상대가 고의적으로 받지 않을 때 심정은 어떠할까? 조급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답답해 미치게 된다. 속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희는 드물게 남편과 싸우게 되면 남편의 전화를 집에서 받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반대의 입장이 되어서 그런지 상대방의 심정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 얼마나 약이 오르고, 화가 나고, 절망에 빠지는지를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경희가 막상 당하고 보니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완전히 상대를 무시하고, 인격을 짓밟는 것이었다.

 

약간 다른 문제지만, 사기꾼들이 사기를 치고 입장이 곤란하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일주일 후에 틀림없이 꾼 돈 3천만 원을 갚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막상 일주일이 지난 다음 전화를 하면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전원이 꺼져 있다.

 

이럴 때 피해자는 미친다. 수십번, 수백번 전화를 한다. 밤늦게 아침 일찍 전화를 한다. 그래도 사기꾼의 전화는 전원이 꺼져있다. 이때 피해자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러다가 나중에 사기꾼의 전원이 켜있어 음성메시지를 수없이 남기면 그때서야 전화를 걸어와 또 거짓말을 한다. 돈을 구하러 다니느라고 전화를 못받았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그것은 또 다른 거짓말이다. 그러면서 며칠 후에 틀림없이 돈을 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똑 같은 악행을 되풀이한다. 이런 것이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고, 피해자는 그 때문에 돈을 잃고 정신까지 우울증에 걸리고 홧병에 걸리는 것이다. 하지만 가해를 하는 사기꾼은 피해자가 그토록 고통을 받는지 알 이유도 없고, 알 지도 못한다. 그게 사기꾼과 피해자의 역학관계다.

 

경희는 남편에게 전화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받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지금 남편은 어떤 심정일까?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린 아이는 지금 어떻게 있을까? 너무 많은 것이 궁금했다.

 

한편 경희의 남편, 철수는 어떤 상황에 있을까? 관계가 악화된 부부는 언제나 동일한 대칭점에 있다. 누가 잘못을 했던, 한 사람이 괴로우면 다른 한 사람도 똑 같이 괴롭게 된다. 그것이 부부다. 완전히 헤어지지 전까지는 부부는 똑 같은 상처를 받고, 똑 같은 고통을 받는다.

 

물론 철수는 경희와 결혼하면서, 경희가 분명히 과거 전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존심이 상해할까봐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철수는 더욱이 의사였기 때문에 경희와 데이트 하면서 경희의 언행으로부터 느낌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철수는 그런 문제에 대해 보편적인 남성 이상으로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하기 이전에 있었던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경희가 결혼할 때의 나이가 벌써 31살이었다. 그때까지 여자가 남자와 연애도 안 하고, 성관계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도 예외인 듯 싶었다.

 

성에 관해서는 오늘 날 많이 개방되었을 뿐 아니라, 아주 정도가 심하지만 않으면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오히려 시대착오적이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어떤 남자가 결혼한 다음 여자의 처녀성을 문제 삼으면, 그는 아무에게도 동정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도덕적으로 비난 받는다. 법원에 가도 혼전 성관계는 이혼사유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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