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2)

 

철수 자신도 결혼하기 전 여러 여자와 연애도 했고, 성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유독 아내인 경희의 혼전 관계만을 문제 삼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혼한 후 6개월이 지난 다음 경희가 옛애인을 다시 만나 섹스동영상까지 찍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때부터 더 이상 정을 주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리고 그때 경희는 절대로 바람을 피지 않겠다고 각서까지 썼던 여자다.

 

그런데 또 다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것도 옛애인이 다시 나타나서 협박을 한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전혀 다른 뉴 페이스가 나타났고, 모텔 현장에서 섹스를 한 직후 나체로 있는 경희를 목격했기 때문에 충격도 다르고, 생각도 달랐다.

 

특히 철수의 입장에서 볼 때 경희가 바람을 핀 이번 남자, 영석은 철수보다 훨씬 체격도 건장해 보였고, 남자답게 보였기 때문에 이런 상대적인 콤플렉스도 무의식적으로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철수는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경희와 이혼을 해야 할까? 별거를 할까? 아니면 아이 때문에 참고 살아야 할까? 이제는 도저히 예전처럼 한집에서 부부라고 하면서 같이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너무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텔방에서 경희와 애인인 영식이 함께 섹스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절대로 용납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철수가 경희에 대해 ‘더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매우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다.

 

경희가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섹스를 했다고 해서 경희 자신이 '더러워진 것‘은 아니다. 경희는 영식과 바람을 피기 전이나 바람을 핀 후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 육체적인 면에서도 없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없다. 경희가 더러워졌다거나, 더럽게 느껴진다는 것은 오직 배우자인 철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닐까?

 

이것이 사랑에 있어 중대한 모순이고 아이로니다. 일반인 입장에서도 비슷하다. 유명한 배우가 결혼하고서도 수많은 염문을 뿌려도 그 연예인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 배우의 배우자만 그 연예인을 인간 같지 않고, 더러운 인간이며, 위선자라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철수는 경희와의 관계에서 더 이상 사랑은 없는 것으로 확신했다. 오직 증오만이 남아 있었다. 사랑이 식으면 무관심이 된다. 하지만 때로는 그 사랑이 무서운 증오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증오의 단계에까지 이르면 이미 종전의 사랑은 식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멸한 것이 된다. 사랑의 사체는 새로운 증오의 기폭제가 되고, 핵폭탄과 같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다.

 

그래서 사랑이 식는 경우에도 그것이 더 나아가 증오로까지 발전되지는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서, 서로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그런데 다른 동업관계와 달리 결혼관계는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회적 체면이 있고, 주변에 가족이 있고, 더군다나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두 사람이 함께 활동하는 것을 모임 또는 단체라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동업이라고 한다. 또는 공동사업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이런 동업관계가 역사가 짧기 때문에 성공하는 확률이 적다. 지금까지 동업해서 재벌 된 사람이 거의 없고, 중소규모의 동업은 대부분 깨지고 서로 소송하기 바쁘다.

 

아무리 작은 사업이라고 해도 혼자 해야지, 두 사람이 함께 하면 잘 되어도 깨지고, 못되어도 깨진다. 적은 규모의 호프집을 동업으로 해보라.

 

처음에는 가족 이상으로 가깝고, 평생 힘을 합쳐 성공하자고 혈서까지 써가면서 다짐을 한다. 하지만 불과 몇 달만 지나보라! 무슨 일이 생기는가?

 

장사가 되지 않고, 적자를 보게 되면 서로를 원망한다. 각자의 기여도가 적다고 불평한다. 먼저 시작하자고 제안한 사람을 탓한다. 반대로 장사가 잘 되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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