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56)
홍 검사가 사무실에 출근하자 난리가 났다. 검찰청에 출입하는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스무명이 넘는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대며, 홍 검사를 둘러싸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막았다. 사진을 찍는 소리가 아주 요란했다. 포토라인에 선 것도 아닌데, 마치 중대한 범죄 때문에 검찰 수사를 받으러 나온 공직자처럼 만들었다.
“검사님! 어제 술집에서 성추행을 했다면서요? 어떻게 된 겁니까?”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술을 마시고 화장실에 가다가 여자 손님과 좁은 통로에서 비켜가던 중 약간의 신체접촉이 있었는데, 여자가 오해를 하여 일어난 해프닝입니다.”
“경찰 말로는 검사님이 여자 엉덩이를 만지고, 술에 취한 척하면서 강제추행을 하였다고 하던대요? 누구 말이 사실입니까?”
“정식으로 강제추행죄로 형사입건은 된 겁니까?”
경찰에서는 이미 기자들에게 홍 검사 사건을 알린 것이었다. 기사 내용은, ‘OO지방검찰청 A 검사가 술집에서 여자 손님의 몸을 만져서 강제추행을 한 사실로 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라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대검찰청에서는 A 검사에 대해 감찰조사를 벌이기로 했다.’는 기사도 덧붙여졌다.
홍 검사는 기가 막혔다. 정말 자신은 성추행한 사실이 없다. 비좁은 통로에서 화장실을 가려다가 술기운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여자 엉덩이쪽으로 손이 닿았을 뿐이었다.
여자는 치마를 입고 있었고, 순간적으로 손을 뗐기 때문에 여자가 크게 문제 삼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엉덩이를 만져서 추행했다고 주장했고, 그 때문에 억울하게 뒤집어 쓰게 된 것이었다.
여자의 일방적인 진술과 주장에 의해 피의자로 입건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하지도 않고, 경찰에서는 기자들에게 이런 사실을 공표하고, 명예를 훼손한 것이었다. 홍 검사 입장에서는 분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홍 검사는 생각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한 수사를 하는 경우, 재판에 넘기기도 전에 언론에 상세하게 알림으로써 조사대상자를 사실상 범인으로 낙인찍어버린다.
그렇게 명예가 추락한 피의자는 나중에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일단 언론에 죄인으로 낙인이 찍힌 다음에는 그 추락한 명예를 회복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당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홍 검사 자신의 일이 되고 보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홍 검사는 경찰관의 이런 행위가 어떤 죄에 해당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형법에는 피의사실공표죄라는 죄가 있다. 형법 제126조에 규정되어 있다.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하는 경우 처벌하는 것이다. 피의사실공표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또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다. 무죄추정의 법칙이 있고, 아직 재판에 회부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직 검사가 성추행을 했다는 식으로 언론보도를 하면 이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보도가 피의사실공표죄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처벌된 예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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