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54)

 

은영은 몹시 울적했다. 가슴은 답답하고, 명훈을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았다. 요새는 아이 때문에 일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밤낮으로 아이 생각만 하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모든 것이 너무 불확실했다.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이 때문에 술도 마시지 못하고 있으니 술집에서 김치찌개를 끓여놓고 소주병을 열병씩 쌓아놓고, 큰소리로 떠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속이 다 뒤집혔다.

 

‘정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그러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고, 모성애는 죽음보다도 강인한 것이어서, 아이를 구하려고 강물에 뛰어들고, 불더미 속에 뛰어드는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튼 은영의 운명은 오직 명훈에게 달려 있는 것이었다.

 

은영은 바람을 쐬러 명동으로 갔다. 연말이라 그런지 거리는 화려했다. 네온사인이 형형색색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명동은 서울의 중심이고 문화의 중심이었다. 오랫동안 명동에는 서울의 멋쟁이들이 아지트 삼아 놀던 곳이다. 다방이 처음 들어온 곳도 명동이었을 것이고, 음악다방이 자리를 잡던 곳도 명동이었을 것이다.

 

명동에는 일본의 관광객들이 한동안 붐볐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다. 명동을 배경으로 한, ‘진고개 신사’도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오래 된 추억의 편린이다.

 

명동에는 특히 젊은 여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물건들이 많았다. 먹고 마시는 가게도 많았다. 은영은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아이 때문에 참았다. 술은 태아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켰다. 커피 맛이 좋다.

 

혼자 조용히 커피를 즐기고 있는데, 박 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영은 한 동안 망설였다. 박 기사의 전화를 받아야 할지, 받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번 정자의 친구, 성균이 박 기사를 만나서 손을 봐주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겁도 났다. 마치 은영이 성균을 시켜서 박 기사를 때렸다고 오해는 하지 않았나 걱정이 되었다. 은영은 하는 수 없이 박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영 씨, 만나서 조용히 할 말이 있어요. 꼭 만나야 해요.”

“만나고 싶지 않아요. 전화로 말씀해 보세요. 무슨 말인지?”

 

“더 이상 시간을 끌면 모든 것이 끝나요? 그러니까 이쯤 해서 내가 양보해서 8천만 원을 은영 씨에게 줄테니, 합의하도록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 돈도 못 받고 아이를 낳아봤자. 명훈 아빠가 부도나고 감방 가면 아무 것도 아니게 돼요. 나도 이달 말에 회사를 그만 둘 거예요.”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절대로 낙태 안 해요. 돈도 필요 없어요. 그냥 아이를 낳아서 내 힘으로 키울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이 문제에서 손을 떼요.”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올 거예요. 당신이 깡패를 시켜서 나를 청부폭행한 것을 경찰서에 고소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과거에 대해서도 모두 폭로할 거고요.”

 

은영은 겁이 났다.

‘정말 이 사람이 내 과거를 모두 폭로하고, 폭행 당한 것을 경찰서에 고소를 하면 골치 아프게 될 텐데...’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요. 지금 바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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