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73)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영미는 현식에게 냉정한 태도로 나왔고, 현식과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현식은 영미가 사장과의 만남에 기울어져가고 있고, 그 이유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직장에서 계속 붙어있고, 사장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으려는 기대심리도 있는 것을 알고 분개했다.

 

영미의 인간성이 아주 나쁘다고 단정했고, 늙은 사장은 돈으로 여자를 꼬시고, 그 때문에 현식과 같은 순수한 남자의 사랑을 짓밟아 뭉개는 악마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동안 영미가 자신의 애정을 받아줬기 때문에, 다분히 일방적이기는 했지만, 사나이 순정이 싹텄고, 그 때문에 한 달 동안 행복했는데 그것 마저 송두리째 무너졌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래서 어느 날 비장한 결심을 하고 영미를 만났다.

 

영미 씨! 나는 영미 씨를 사랑합니다. 이제 제게는 영미 씨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사장님과 만나지 말고, 다른 직장으로 옮겨요. 영미 씨는 내가 책임질 게요.”

 

영미는 말이 없었다. 영미는 현식을 사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제는 사장이 싫지도 않고, 회사를 그만 둘 마음은 추호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현식이 세상 물정을 모르고, 여자 마음을 전혀 모르면서, 혼자 착각에 빠져 다른 여자를 마음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 의미에서 현식은 너무 어리석은 남자였다.

 

현식 씨. 저도 어린 애가 아니예요. 그리고 예전에 이미 남자를 사랑했던 적도 있었어요. 배신도 당해보기도 했고요. 사랑 별 거 아니예요. 사랑이란 시간이 가면 모든 사랑은 시들해지고, 아무 것도 아닌 거예요. 잠시 타오르는 불꽃이지요. 그리고 사랑이 밥 먹여주는 것 아니예요. 현실이 중요해요. 냉정하고 비정한 현실 앞에서 추상적이고 무능력한 사랑은 곧 시들어버리고 소멸하게 돼요. 그 때 남는 것은 왜 현실보다 사랑을 우위에 두고 어리석게 몸을 뜨겁게 만들어 에너지만 소비했고, 단기적인 이익을 포기했는지 하는 후회만 남아요. 제가 살아가는 방식을 욕하지 말아요. 지금 사장은 저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고, 돈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예요. 저를 좋게 보고, 귀여워하고 있어요. 그런 사장의 호의를 차는 것은 저로서는 손해예요. 그러니 이해해 주세요.”

 

현식은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켰다. 안주는 김치 몇 젓가락이었다. 술이 썼기 때문에 매운 김치로 속을 달래야했다. 쓴맛과 매운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세 잔을 갑자기 마시자, 머릿속이 맑아졌다.

 

술에 취해 혀는 꼬부라졌지만, 이성과 판단력은 더러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현식은 갑자기 영미 옆으로 자리를 옮겨 어깨에 팔을 올려놓았다. 영미도 술을 상당히 마신 상태라 현식의 그런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영미 씨이! 그래. 잘 사아라요. 늙은 놈 처이비 되어서 부귀영화 누려요. 내가 포기할 게요.”

 

이 일이 있은 후 현식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영미를 더러운 벌레처럼 보고, 사장은 더러운 뱀처럼 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일은 종전보다 두배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회사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들이파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다. 비리나 잘못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때 그때 파일을 복사하고 장부는 복사해서 집으로 옮겼다. 아주 용의주도하게 사장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사장을 위해 충성을 다하며, 영미에 대한 구애도 포기하고, 남들이 벌이는 로맨스가 더럽든 깨끗하든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현식의 내심도 모르고, 영미는 본격적으로 사장과 밀애를 즐겼다. 사장은 영미를 정식의 애인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핸드백이니 구두니, 옷이니 각종 명품을 사주었고, 외제차까지 사주었다.

 

영미는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로 팔자를 고치는 것처럼 보였다. 사장은 아예 영미 이름으로 오피스텔까지 얻어놓고 그곳에서 밀애를 즐기는 것이었다.

 

하기야 돈 많고 사회적 체면 있는 주제에 영미와 호텔이나 모텔을 전전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늙은 사장이 차를 직접 운전하고 한적한 곳으로 나가 차안에서 정사를 벌이다가는 젊은 사람들에게 들켜서 봉변을 당할 위험이 높다.

 

가끔 고급 승용차를 가지고 카섹스를 하고 있으면, 못된 사람들이 멀리서 돌을 던져 차를 파손하고 도망간다. 그러면 발가벗고 있다가 재물손괴범을 따라가서 잡기는 불가능하다.

 

비싼 차 수리비만 많이 들어가고 돌에 맞는 순간 극도의 불안심리가 작용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도 있다.

 

래서 약은 사장은 오피스텔을 얻어놓은 것이다. 회사에서 경리를 담당하고 있는 현식은 갑자기 사장이 회사 자금으로 오피스텔을 전세로 얻는 것을 알고, 그 오피스텔까지 몇 차례 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곳 주차장에는 사장이 사준 영미의 작은 벤츠가 버젓이 주차되어 있었다.

 

현식은 참고로 하려고 그 벤츠 사진까지 찍어놓았다. 그리고 그런 것 때문에 극도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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