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55)
아버지는 엘리스를 낳고 어머니와 장시간 논의를 한 끝에 이름을 홍알새로 짓기로 했다. ‘새롭게 알기’ ‘새로운 지식’이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알기 새로운 것’에서 알자와 새자를 따왔다. 어머니는 ‘앎,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에서 ‘알새’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엘리스를 낳고 6개월이 지나도록 호적신고를 하지 않고 있던 아버지는 어느 날 식당에서 친구들을 만나 술안주로 홍어를 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친구들에게 너무 귀엽고 예쁜 딸을 낳았다고 자랑을 하니까 친구들이 호적에 올렸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아직 못 올렸다고 하니까 호적에 올리기 전에는 딸 자랑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 딸이라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술을 마시다 말고 곧 바로 구청으로 달려가서 호적신고를 했다. 퇴근시간 6시를 5분 남겨놓고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렇게 엘리스의 이름을 알새로 정했던 것인데, 아버지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호적신고를 하다가 홍어알로 잘못 신고를 했다.
1년 후에 호적에 ‘어알’로 되어 있는 것을 알고 아버지는 ‘알새’로 고쳐달라고 사정도 하고, 항의도 했지만 아버지가 자필로 신고서에 ‘어알’이라고 써놓은 증거가 보존되어 있어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영어로 표기를 하고 있다가 나중에 미국 시민권자가 되려고 마음 먹고 생각해 낸 이름이 엘리스였다.
그것도 영어로 Alice Hong이라고 했던 것인데, 아버지는 끝내 알리세를 고집했다. 아버지는 영어가 서툴러서 Alice가 ‘알리세’지 어떻게 ‘엘리스’라고 읽을 수 있느냐고 화를 냈다.
어머니도 옆에서 딸 편을 들다가 하마터면 몇 대 맞고 집에서 쫓겨날 뻔했다 그래서 엘리스 홍은 20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 뜻대로 알리세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독자적으로 엘리스 홍이라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엘리스는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많은 돈을 들여서 마침내 미술대학교 들어갔다. 서양화를 전공한 엘리스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림밖에 몰랐다. 그 어떤 남자들이 와서 꼬셔도 넘어가지 않았다.
피카소를 꿈꾸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파리로 유학을 가려고 했다. 아버지도 엘리스의 뜻대로 모든 뒷바라지를 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엘리스가 대학교 졸업반 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집안은 그래서 엉망이 되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는 전무라는 사람이 다 횡령과 배임을 해서 파산지경으로 만들었다. 엘리스는 그래서 근근히 대학교를 졸업하고 모든 꿈을 접었다.
하는 수 없이 커피를 배워서 커피숍에 취직을 했다. 그러다가 돈이 많은 사장을 만났다. 26살 때 만난 사장은 무려 56살이었다. 사장과 1년 동안 연애를 했는데, 사장은 엘리스에게 작은 아파트도 전세로 얻어주고, 커피숍까지 차려주었다.
그렇게 1년 반을 편하게 지냈는데, 그 사장의 부인이 이런 사실을 알고, 찾아왔다. 부인은 엘리스에게 조용히 떨어져 나가라고 했다. 엘리스도 동의했다. 엘리스는 그 부인이 전세금도 빼앗고 커피숍도 못하게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그건 모두 엘리스가 그동안 고생한 대가라고 하면서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 부인은 엘리스가 사장의 아이를 가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것같았다. 엘리스는 그렇지 않아도 사장이 시간이 가면서 싫어졌고, 같은 또래의 남자를 만나고 싶었는데 잘 됐다고 생각했다.
엘리스는 부인이 요구하는 대로 앞으로는 절대로 사장을 만나지 않겠다고 각서를 썼다. 만일 한번이라도 더 만나면 전세금과 커피숍을 부인에게 돌려주겠다고 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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