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14)

 

강 교수와 정혜는 결혼 1주년 기념행사를 거창하게 하기 위하여 미리 준비한 대로 결혼식 당일 전날인 1211일 전야제를 하기로 했다. 일부러 북한강변에 자리 잡은 고급 모텔을 잡았다.

 

부근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와인과 함께 먹었다. 그런데 마침 그 레스토랑에 정혜와 1년간 연애를 했던 남자가 여자 친구와 같이 들어왔다.

 

정혜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그 옛 애인 일행이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았다. 정혜가 다시 테이블로 돌아오자 그 옛 애인이 갑자기 일어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정혜는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그냥 담담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정혜는 숨이 막혔다. 서로 좋아했는데, 정혜의 부모가 반대를 해서 하는 수 없이 헤어졌던 남자다.

 

그 남자는 음악을 했다. 그런데 음악에서 성공을 하지 못해 건달처럼 지내고 있었다. 직장도 없고 돈을 벌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정혜의 부모는 죽기살기로 반대를 해서 헤어졌다.

 

그리고 중매를 해서 지금의 강 교수와 결혼을 했던 것이다. 그 남자는 헤어질 때, 자신은 정혜 아니면 절대로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 나타난 그 남자는 아주 멋있는 지적인 여자를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정혜는 일부러 남편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명랑하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와인을 많이 마셨다.

 

그러다가 술에 취했다. 화장실에 가서 토를 하려고 했다. 정혜가 화장실에 가서 오랫동안 있자, 그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강 교수는 술에 취해 자리에서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그 남자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정혜의 등을 두드려주고 정혜를 껴안았다. 정혜도 가만히 서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정혜와 강 교수는 모텔로 갔다.

 

어두워진 강에는 검푸른 강물이 가득 차 있었다. 겨울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에도 강물은 정지해 있었다. 물속에는 사랑의 아픔이 가득차 있었다. 강물은 너무 아팠다.

 

무엇 때문에 아픈지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세상의 모든 행복이 사라져버렸다. 정혜는 지금 이 시간이 고통이었다. 자신이 결혼했다는 사실도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의 남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가슴속에는 오직 그 남자의 체온만이 느껴졌다. 그 사람의 숨결만이 곁에 있었다. 갑자기 남편인 강 교수가 낯설었다.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지금 이 작은 공간에 옆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정혜는 눈물을 흘리면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 교수는 술에 취해 곧 침대에 누워 골아떨어졌다. 검푸른 강물 위로 그 남자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멀리 바다로 가는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정혜가 있는 지금 이 방에도 여러 차례 그 남자와 같이 들어와 몸을 섞은 추억이 서려있었다. 운명! 피할 수 없는 운명! 바로 그것이었다. 정혜가 벗어나고자 했던 그 운명의 사슬은 여전히 정혜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사슬의 매듭은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문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 남자이리라. 하지만 정혜는 그 문자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용히 전원을 껐다. 그리고 샤워도 하지 않은 채 강 교수의 곁으로 갔다. 한참을 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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