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6)
복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구치소로 가서 국홍을 면회했다. 자주 다니다보니 특별히 할 이야기도 없었지만, 복자는 혹시 국홍이 구치소에서 자살을 할까 제일 두려워했다. 때는 코로나19라고 하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전 세계로 퍼져 유행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정말 무서웠다.
이 질병으로 인한 감염자가 속출하고 사망자가 늘어나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고, 그후 팬데믹(감염병 세계 유행)까지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복자가 TV를 켜면 수시로 한국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브리핑과 관련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다.
복자는 두려웠다. 더군다나 직접 운전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치소를 오고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도 택시 안에서도 감염될 수 있다고 하니까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국홍이 구속되자 술집은 문을 닫았고, 영업을 하지 못했다. 복자는 남편이 강간죄로 구속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봐 일체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았다. 마침내 법원에서 국홍에 대한 재판날짜가 잡혔다. 복자는 반드시 국홍을 빼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앞으로 어떻게 될 거냐고 물어보았다. 변호사 사무장은 복자에게 무죄를 다투어야 무죄 받는 것은 어렵고, 재판만 오래 끌기 때문에, 차라리 피해자와 합의하고 강간죄를 인정하고 집행유예로 나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복자는 그게 말이 되냐고 따졌지만, 사무장은 그러면 자신은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복자는 국홍과 상의했다.
“여보. 변호사님은 강간죄를 인정하고 집행유예로 빨리 나오자고 하는데, 그게 좋지 않아요?”
“아니, 변호사님은 지금까지 나를 무죄로 석방시켜준다고 약속했는데, 왜 갑자기 달라졌을까? 그리고 그 여자가 합의를 해줄 것 같지 않은데. 아무튼 우리는 법을 모르니까 변호사님 시키는 대로 해야지, 어떻게 하겠어? 그러면 그 여자 좀 만나봐.”
복자는 그 여자에게 전화를 해서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스텔라는 순순히 만나겠다고 했다. 복자는 혼자 나가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그런 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구치소에 국홍을 면회 다니면서 알게 된 성철옹(남, 45세, 가명)에게 전화를 했다.
성철옹은 다단계회사에서 회장을 도와주다가 회사가 부도나고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무더기로 구속되자, 밖에서 변호사를 선임해주고, 회사 임원들 형사재판을 거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철옹 자신은 직접적으로 조사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다단계회사 자금 일부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돈도 잘 쓰고 있었다. 철옹도 과거에 사기죄로 징역을 산 경험이 있어, 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철옹은 구치소 대기실에서 복자를 자주 보면서 불쌍하게 생각하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복자도 철옹이 좋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에 같이 차를 마시면서 속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철옹은 인간적으로 복자를 딱하게 생각하고, 복자의 남편 국홍을 나쁜 인간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나쁘지만, 결혼했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면서 열심히 해서 빨리 석방시키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철옹은 자가용을 타고 면회를 다녔기 때문에, 구치소에서 복자를 만나는 경우에는 철옹의 차로 복자의 집까지 데려다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래서 복자는 미안했지만, 이번에 강간사건의 피해자를 만나면서 합의를 보려고 할 때 혼자 가는 것이 그래서 철옹에게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철옹은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을 복자의 사촌오빠라고 하자고 했다. 그래서 피해자와 만날 때 철옹은 복자를 사촌동생이라고 하면서 말을 놓기로 했다.
복자는 철옹과 함께 스텔라를 만났다. 시내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저녁 시간이었다. “미안합니다. 우리 아빠가 잘못했다고 하면서,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라고 했어요. 아빠는 원래 고아출신으로서 열심히 살던 사람인데, 이번에 술에 취해서 큰 실수를 했다고 해요. 한번만 이해하고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피해본 데 대한 배상은 할 게요.”
옆에서 철옹이 본격적으로 거들었다. “나는 사촌오빠예요. 배상을 할 테니, 어느 정도 하면 되는 지 알려주세요. 돈은 내가 대신 내 주는 거예요.”
스텔라는 고민이 되었다. 돈을 받자니 그렇고, 받지 않자니 그랬다. “저는 그 날 아르바이트 나갔다가 갑자기 폭행을 당하고 강간을 당했어요. 그 때문에 남자 친구와도 헤어졌어요. 남자 친구는 제가 동의해서 했다고 오해하고 있어요. 그쪽에서 저에 대한 배상을 얼마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말씀해 보세요.”
철옹이 말했다. “글세, 지금 동생네 사정이 너무 어려워요. 술집도 문을 닫았고, 변호사 비용도 많이 들었어요. 5백만원 정도면 안 될까요?”
스텔라는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며칠 생각하겠다고 했다. “좋아요. 그럼 며칠 동안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우리 세 사람은 어떻게 보면 감방에 있는 사람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인 거예요. 서로 미워할 이유는 없어요. 그리고 합의는 합의이고, 내 여동생이 지금 남편 때문에 창피하고 술집도 망하고, 남편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자꾸 죽고 싶다고 해요. 그러니까 이왕 오늘 만난 거, 셋이서 같이 식사나 하면서 더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스텔라도 갑자기 철옹의 제의가 싫지 않았다. 복자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전에 복자도 고아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호텔 밖으로 나가서 식사 겸 술을 마실 곳으로 갔다. 복자는 울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철옹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말 사촌오빠로서 복자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센스 있게 맞장구를 쳤다. 복자가 살아온 과거가 너무 딱하고 불쌍해서 스텔라도 나중에는 같이 눈물을 흘렸다.
세 사람은 술을 많이 마셨다. 세 사람 모두 취했다. 한참 울다보니까 나중에는 스텔라가 거꾸로 가해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스텔라 때문에 불쌍한 고아, 국홍이 감방에 가있고. 또 다른 고아 복자가 지금 비참하게 된 것처럼 상황이 반전되었다. 이런 무대를 만들고, 분위기를 연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철옹 P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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