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95)

 

그러던 강 교수가 이상한 일로 선미를 멀리하고, 그 때문에 선미도 강 교수로부터 멀어졌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그때 발렌타인데이가 찾아왔다. 그날 미경은 지독한 열병을 앓았다. 무슨 까닭인지 몰랐다. 이미 강 교수에게서 마음은 멀어진 상태였다. 다시 선미의 일상으로 돌아와 많이 냉정을 되찾은 때였다.

 

그런데 문득 강 교수의 품이 그리워졌다. 미칠 듯이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선미는 강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강 교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미경의 전화를 차단해놓은 것 같았다.

 

한편 강 교수와 가끔 만나 데이트도 하고 육체관계도 하고 있던 선미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28살 나이에 강 교수와 깊은 관계에 들어갔다. 모든 것은 선미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강 교수가 선미를 유도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선미도 대학교 다닐 때 남자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풋사랑이었다. 대학시절의 낭만이었고, 남자 친구 역시 미숙하고 서툴렀다. 관계를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청춘의 몸부림에 불과했다. 피임에 급급했고, 아무런 장래가 보장되지 않는 사랑의 유희였다.

 

그러다가 강 교수의 지도를 받고 대학을 졸업하고, 강 교수의 도움으로 회사에 취직까지 했다. 선미는 그때마다 강 교수의 가르침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갔다. 그러면서 교수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존경했다. 강 교수를 만날 때마다 경건한 의식을 치루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강 교수와 차를 타고 야외로 나가 드라이브를 하던 중 강 교수가 인간적으로 매우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선미를 원하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했다.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 강 교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맡겼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적인 의리였고, 보답이었다.

 

그 순간 선미가 강 교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의 욕정을 채워주는 것뿐이었다. 자신은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오직 강 교수가 자신을 통해, 실존의 허망함을 추방시키는 의식을 사제로서 주관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마지막 순간에 강 교수가 절정에 이르러 신음소리를 내뱉었을 때 제물로 바쳐진 작은 양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때부터 선미는 강 교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모셨다. 강 교수가 원하면 기꺼이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바쳤다. 하지만 강 교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미를 자주 원하지는 않았다. 한 달에 한두 번, 아주 갑자기 연락을 했다.

 

그 행위를 할 때 강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인지, 그 순간에는 언어의 감각을 상실하는 것인지 몰랐다. 강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꼭 감은 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의식을 치룬 다음, 선미에게는 늘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28살과 45! 17살의 차이였다. 엄청난 차이였다. 하지만 선미는 곧 나이 차이를 극복했다.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연애를 할 때는 그 많은 나이 차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정이란 이끌려 들어가는 것! 그래서 선미는 서서히 강 교수의 품으로 끌려들어갔다.

 

앞으로 자신이 젊은 남자와 결혼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떤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직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의 실존을 맡기고 의지하고, 자신의 영혼을 확인하는 방법은 강 교수의 육체와 정신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선미는 이제 더 이상 강 교수에게 안길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삶이 얼마나 허망한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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