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특별수사를 받고 공황상태에 빠지다

 

지금 명훈 아빠가 공황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 그 어떤 방법도 없었다. 가만 있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누군가 회사 내부 자료를 빼내서 제보를 한 것이다. 검찰에서는 우리 회사에 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검찰에서 회사의 비리와 문제점을 더 파고들면, 부도날 것이고, 징역을 많이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명훈 아빠의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회사는 부도나고 자신은 감방에 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가벼운 행정법규위반사건으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검찰의 특별수사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수사를 받는 사람은 공포에 질린다. 저 혼자 깊어가는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밖으로 탈출해서 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덫에 걸려 절망한다. 이럴 때 참 외롭다. 상의를 할 사람도 없다. 상의를 한다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족과 대화를 해도 뾰족한 방법은 없다.

 

명훈 아빠는 술을 마셨다. 담배를 줄로 피었다. 신체를 학대시키고 마비시킴으로써 잠시나마 무감각해지고 싶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사람은 마약을 찾기도 한다. 수면제를 먹고 잠에 빠진다.

 

명훈 아빠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자신이 너무 억울했다. ‘왜 하필이면 내가 타겟이 된 것인가?’ ‘하나님은 너무 불공평하다. 무슨 이유로 이런 시련을 준단 말인가!’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암 진단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60살도 되지 않는 나이에, 한참 팔팔하게 사회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몸이 이상해서 병원을 찾는다. 갑자기 폐암 판정을 받는다. 그것도 폐암 말기다. 그는 한 순간에 패닉상태에 빠지고, 몇 달 또는 몇 년간 병마와 싸우다가 끝내 세상을 떠난다.

 

그런 불행이 자신에게 닥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폐암에 걸리면 다른 암보다 특별히 호흡곤란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예후가 나쁘다는 사실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암에 많이 걸려도, 자신만은 암에 걸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건 나중에 70이 넘고, 80이 넘었을 때의 아득히 먼 훗날의 허상이라고만 생각했다.

 

검찰수사도 이와 비슷하다.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자신에게 특별수사가 들이닥치고, 법이라는 무서운 창과 칼이 목을 향해 겨누고, 곧 수갑을 차고 감방에 던져지고, 끌려다니며 짐승처럼 먹고 자야 할지 모른다는 현실은 완전히 돌게 만든다.

 

명훈 아빠는 그동안 외국에 출장 가거나, 여행을 다녀올 때 반드시 양주를 사가지고 왔다. 병이 예쁘고, 이름이 멋있는 것, 유명하다는 술은 아끼지 않고 면세로 열심히 사가지고 와서 집안에 전시해놓았다. 싸구려 술 이외에는 아까워서 마시지도 못했다.

 

그러나 공무원에게는 고가의 양주를 기꺼이 선물로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것은 공무원들은 아무리 주어도 전혀 고맙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명훈 아빠는 뇌물과 선물을 끊임없이 주면서 사업을 해왔다.

 

술에 취해 몽롱한 상태인데 켜져 있는 TV에서는 가요무대를 하고 있었다.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 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같도다>

 

아주 옛날 노랜데, 어떤 젊은 여자 가수가 대신 부르고 있었다. 이런 구성진 노래는 나이들어 늙음과 허망함이 저절로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 불러야 제 맛인데 새파랗게 젊은 가수가 부르니 도통 분위기가 맞지 않았다. 시골 한학당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붓으로 천자문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노인 돌아가신 곳에서 아주 새파란 젊은 이가 노트북을 가지고 워드프로세서를 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원래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 이름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아마 세상을 떠났을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 스마트폰으로 오리지날 가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나도 죽을 판인데, 돌아가신 분 이름을 확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몇 달 전처럼 집안에 아무런 우환이 없을 때 같았으면, 명훈에게 가수 이름을 찾아보려고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모든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귀찮고 허망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작은 운명 (2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