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도둑질하기가 어려워졌다

 

홍 사장은 명훈 아빠에게 교소도에 갔다온 인생 선배로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이는 동갑인데 남이 못하는 직접 체험을 많이 해서 선배가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교도소라고 해서 들어가면 꼭 죽는 줄로만 생각했어. 사람이란 참 이상한 존재야. 막상 들어가보니 곧 바로 적응이 되는 거야. 적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생각보다 빨리 익숙해져서 놀랐어.”

자유가 박탈당하니까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럽겠어? 먹는 것고 그렇고, 자는 것도 그럴텐데.”

 

물론 그거야 그렇지. 처음에는 억울하게 구속되고 갇혀있으니까 죽고 싶은 마음에 환경은 이차적인 것이 되어 버려. 고소인들과 싸우고, 경찰과 싸우고, 검사와 싸우다 보면 몇 달은 그냥 지나가. 재판에 넘어가면 판사가 재판을 아주 천천히 하니까 갇혀 있는 사람은 지쳐버려. 나중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 심정이 되는 거야. 교도관이 무섭고 나라는 존재는 없어져 버려. 스스로 환경의 노예가 되는 거야. 아무 의욕도 없고, 세상이 무섭고, 모든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져. 가족도 처음에는 면회를 오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그런지 더 이상 면회도 오지 않아. 편지를 보내도 연락도 없어. 그때는 나가서 죽이고 싶었는데, 그것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결국 지쳐서 포기하게 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명훈 아빠는 홍 사장 하는 말이 그다지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그랬다. 자신과 홍 사장은 전혀 다른 환경에 있으니까. 자신은 절대로 감방에 갈 이유가 없으니까.

 

점쟁이도 명훈 아빠에게, “당신의 사주와 관상, 그 외 모든 것을 분석해 보면 앞으로 5년 동안은 당신에게 관재수(官災數)는 없어!!!”라고 100% 확신에 찬 말을 해주었다. 그래서 점을 본 값을 기분이 좋아 두배로 준 적이 있었다.

 

교도소에 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돼. 나는 고시공부를 오래 해서 법을 아니까. 재소자들은 나를 존경하게 돼. 많은 것을 물어와. 나는 아는 대로 무료로 상담을 해줘. 그렇게 하다 보니 법에 대한 실력이 대번 늘어. 웬만한 변호사보다 훨씬 아는 게 많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4시간 감방에서 내 문제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의 형사사건만을 생각하고, 보고 듣고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지. 감방에서는 오직 사람들이 구속될 정도의 중한 사건만 취급하게 돼. 경범죄는 취급하지 않아. 그리고 민사재판이나 가사재판은 절대로 취급하지 않아.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나 절실한 환경에서 전문가가 되는 거야.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최고의 철학자, 과학자가 되듯이 말야.”

 

명훈 아빠는 홍 사장 이야기가 신기하게 들렸다. 그렇게 열심히 한 고시공부를 감방에 직접 들어가 써먹다니, 그야말로 인생의 아이러니였다.

 

감방에 있으면,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죄로 들어왔는지를 듣게 돼.”

 

신입회원은 선배님들에게 공손한 태도로 자신의 범죄사실을 신고한다. 홍 사장은 재판장과 같은 입장에서 곁에 많은 배심원들을 데리고 교도소 초년병인 신입회원의 스토리를 청취한다. 국회 청문회장처럼 가끔 사람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저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배우지도 못하고 부모님도 일찍 여위고 살다보니 절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사람들은 절도범에 대해 동정을 한다. 그러나 절도범은 자신의 환경이 아니라 범행의 실패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때 그 집에 들어갈 때 더 많은 준비를 했어야 했어요. CCTV에 얼굴이 찍히지 않도록 했어야 했는데, 실수를 한 거예요.”

 

요새는 옛날과 달라서 도둑질도 주먹구구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과학적인 기법으로 짧은 시간 내에 돈이 많은 부잣집에 들어가 사람을 해치지 않고 패물이나 현금이 있는 곳을 찾아내서 빨리 가지고 현장을 이탈해야 한다. 도로 곳곳에 CCTV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검거되기가 쉽다. 모자를 눌러 쓰고, 미세먼지를 핑계로 마스크를 쓰고 도주해야 한다. 침입할 집을 사전에 수십차례 답사해야 한다.

 

특히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귀중품은 집안에 깊숙이 감추어놓기 때문에 소풍 가서 보물 찾기보다 더 어렵다. 이것이 기술인데, 역시 많은 실전 경험에서 노하우가 터득된다. 어렵게 훔친 물건도 장물처분하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게 고민이다.

 

남의 물건을 몰래 훔치는 도둑놈들의 고민도 깊어만 간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도둑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재산이나 재물에 대한 관리가 소홀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은 대개 단독주택이거나 허름한 판잣집, 슬라브지붕집이었다. 대문이 있어봤자, 담장이 낮아 쉽게 넘을 수 있었다. 대개 집에 시계나 금반지 등 패물을 보관하고 있었고, 현금도 조금씩 가지고 있었다.

 

주택을 지키는 경비원도 없었고, 경찰의 수사력도 형편없었다. 그래서 남의 집에 담을 넘어 들어가거나, 문이 잠겨있지 않은 경우 몰래 들어가서 짧은 시간에 귀중품이나 값나가는 옷을 들고 나오면 90% 이상은 미제사건으로 끝났다.

 

경찰도 사람을 해치지 않은 절도사건은 신고만 받아놓을 뿐 잡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워낙 절도사건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절도범 한 명이 현행범으로 검거되거나, 장물처분과정에서 붙잡히면 가혹행위를 하거나, 집요하게 신문을 해서 과거의 절도범죄를 모두 자백을 받는다.

 

그러면 수십건의 관내 미제사건을 모아서 재판에 넘긴다. 시간이 가면서 절도범의 범죄환경이 어렵게 되었다. 특히 아파트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주거침입절도범죄가 경비 때문에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또한 장물아비가 거의 사라져서 절도한 물건을 처분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CCTV 같은 과학적 장비의 등장은 도둑놈에게 치명적인 장애가 되었다. 더군다나 신용카드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집에 현금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큰 애로사항이었다.

 

이 때문에 소액의 현금을 노리는 소매치기들은 사업할 시장을 거의 잃어버렸다. 택시강도도 마찬가지다. 택시 기사들이 교통카드나 신용카드로 돈을 받으니까 강도짓을 해야 기사 잠바나 구두밖에 강제로 빼앗을 물건이 없다.

 

그렇다고 여자 택시 기사를 강간하려다가는 해병대 출신 여자 기사를 만났다가는 두 다리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당하기도 한다.

 

감방에 있는 사람들은 도둑으로부터 탁월한 절도 솜씨와 풍부한 경험, 좋은 머리에 감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는 동정하지만, 도둑놈이 또 무슨 도둑질을 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감방에 있는 홍 사장을 비롯한 점잖은 재소자들은 신입회원의 죄명이 절도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절도범의 얼굴이 왠지 응큼해 보이고, 어두워 보이고, 도둑놈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참 이상한 선입관이었다. 하기야 감방안에서 훔쳐가야 무엇을 훔쳐갈 것이 있겠냐마는,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것처럼, 밖에서는 소를 도둑질 했어도, 감방 안에서는 바늘이라도 훔쳐갈까봐 걱정되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그런데 우리 속담은 모순이다. 비현실적이다. 경험칙상 바늘 도둑은 평생 늙어도 바늘 도둑으로 남는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질 할 의지나 능력은 절대 없다.

 

뇌물을 먹는 공무원도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크게 먹지, 말단 공무원은 언제나 뇌물액수가 근소하다. 떡고물 값인데도 이상하게 말단은 징역가고, 파면된다. 지체 높은 국회의원은 뇌물죄로 구속되었다가, 몇 년 후에는 또 국회에서 부정부패를 추방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품고 있는 장면이 TV에서 보인다.

 

홍 사장은 군대를 면제받았기 때문에 젊었을 때 단체생활을 해보지 않았다. 군대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른다. 군대 가서 단체생활을 하게 되면, 남의 눈치도 보게 되고, 공동으로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늘 콤플렉스를 느꼈다.

 

홍 사장은 구치소에 있으면서 형법책을 많이 보았다. 대법원 판결도 읽고, 형사사건에 관한 법률지식을 열심히 익혔다. 그래야 재소자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소문이 났다. 일부는 와전되기도 했다.

 

다른 방에서는 홍 사장이 변호사 자격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미국에 유학 가서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천재라고도 했다. 심지어는 홍 사장의 이혼한 전 부인이 현직 검사라는 엉뚱한 말도 퍼졌다.

 

- 작은 운명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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