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공부를 오래 한 남자의 불운한 이야기
가요무대가 끝나고 TV 채널을 돌리자 뉴스가 나오는데, 현직 검사가 투신자살했다는 보도를 하고 있었다. 보도하는 아나운서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고속도로에서 연쇄충돌사고로 3사람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보도할 때와 똑 같은 표정과 억양, 감정이었다.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중압감과 수치심, 억울함 때문에 투신해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는 뉴스였다. 그 검사가 수사받고 있는 내용은 명훈 아빠가 볼 때 크게 무거운 죄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왜 자살을 했을까? 그냥 조사 받고 재판을 받지? 잘못되면 1∼2년 징역을 살고 나오면 안 될까? 나이도 많지 않은 검사가 죽다니? 가족들은 어떻게 하라고?’
명훈 아빠는 갑자기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그걸 보니 검찰수사가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지옥에서 올라온 죽음의 사자 같았다. ‘검사는 사람도 아닌 거야.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형사처럼 법만 앞세워 남을 죽이는 악마와 같은 존재야. 피도 눈물도 없어.’
언젠가 명훈 아빠는 고등학교 친구인 홍 사장으로부터 교도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홍 사장은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했다. 서울에 있는 어느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법대에 다니면서 고시공부를 했는데, 이상하게 꼭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것이었다. 같이 공부하는 선배나 후배들이 보면 홍 사장 실력은 법대 교수보다도 좋은데, 시험만 보면 언제나 근소한 차이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운칠기삼이라고 시험은 운이 중요한데, 그 놈의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한 마디로 재수가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 같았다.
홍 사장 부모들이 용한 점쟁이한테 점을 쳐보니, ‘홍 사장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조부모가 제대로 밥도 못 얻어먹고 구천을 떠돌고 있으니 손주가 잘 될 까닭이 있겠느냐고 욕을 하면서 꾸짖었다.
점쟁이 말이 사실이라면 욕을 먹어도 쌀 노릇이었다. 그때서야 홍 사장도 그동안 왜 그렇게 많이 떨어졌는지 이해가 갔다. '아! 역시 세상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고, 조상님이 중요한 거야! 이제 됐다.'
그래서 비싼 돈을 들여 천도제를 지내고, 산소를 명당 자리로 옮겼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산소를 옮긴 다음 홍 사장은 오히려 더 큰 점수 차이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홍 사장이 제일 싫어해서 잘 보지 않은 곳에서만 문제가 출제되었다.
그렇게 10년을 고시낭인으로 지내던 홍 사장은 끝내 고시를 포기하고,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처음에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아주 작은 규모로 라면 집을 시작했다. 홍 사장이 고시 공부를 오래 했기 때문에 돈 없고 불쌍한 고시생들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정성껏 라면을 끓여주고 고시에 합격하는 비결을 알려주었더니 장사가 아주 잘되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시작했고 점차 PC방과 호프집, 노래방 등으로 사업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러다가 지리산에서 오래 공부를 했다는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해서 연쇄부도가 났다. 그 사기꾼도 한때는 신림동에서 고시공부를 했다는 머리 좋은 천재였다. 새로운 스타일의 신종사기수법을 1년에 한가지씩 개발해서 돈을 뜯어내고 있다는 소문도 들렸다. 모든 재산을 한 순간에 날리고, 억울하게 사기꾼으로까지 몰린 홍 사장은 자신의 모든 법률지식을 동원해서 백방으로 막았지만, 끝내 징역을 3년 살고 나왔다.
그때 홍 사장 사건을 맡았던 젊은 변호사는 인상이 꼭 사기꾼 같았는데,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 그 변호사도 무엇을 잘못해서 그랬는지 구속되어 포토라인에 선 것을 홍 사장이 출소 후에 우연히 TV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 사기꾼에게 내가 돈을 많이 주고 사건을 맡겼으니 내가 징역을 산 게 당연하지!'
홍 사장은 다시 한 번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이치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홍 사장이 징역을 살고 나오니, 부인은 어떤 놈팽이와 도망을 갔다. 사람들 말로는, 부인은 나이 어린 정력 좋은 건달과 같이 필리핀인가 베트남인가로 갔다고 했다. 아들 한명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해서 연락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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