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허위고소를 해서 강간범으로 구속된 남자

 

홍 사장은 구치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을 때에는 미결수(未決囚)였다. 재판이 대법원까지 가서 끝이 나고 확정되자. 기결수가 되었다. 그래서 구치소에서 다른 교도소로 이감이 되었다. 10개월 가까운 기간, 머물면서 익숙해진 곳을 떠난다는 것은 무척 서운하고 두려운 일이었다.

 

사회에서 이사를 하는 것과는 달랐다. 이사를 하게 되면, 사전에 어느 곳으로 갈 곳인지 결정하고, 미리 이사갈 곳을 둘러본 다음 거처를 구하고 이사를 한다. 감방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에는 그렇지 않다.

 

재소자의 자유의사는 완전히 통제된다. 교도관이 명령하는 대로 동물처럼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채 차에 실린다. 화물칸에 실리는 것이 아니라, 좌석이 있는 버스에 실리는 것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유리창도 없는 버스 안에서 차창 밖을 보지도 못하고 어디론가 옮겨간다.

 

아주 낯선 교도소에 들어가 점검을 받은 다음 똑 같은 입감절차를 거쳐서 머물 방실이 결정된다. 새로운 수감번호가 가슴에 적힌다. 지금까지 수십년동안 이어온 번호의 주인공이 된다. 홍 사장이 지금 부여받은 이 번호, <419>을 이 교도소에서 가슴에 차고 있었던 사람들은 출소한 다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모두 남자였을 것이다.

 

그 중에는 힘든 세월을 교도소에서 신음하다가 교도소 문밖으로 나갔다가, 일부는 다시 들어왔을 것이다. 대부분 아픈 기억을 가슴에 품은 채 또 다시 힘든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한많은 이 세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이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기야 이미 죽었다면, 그는 더 이상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이사를 한 영혼이라고 해야 맞다. ‘사람과 영혼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 ‘호흡의 정지’ ‘심장 박동의 정지라는 경계가 있다. 이러한 표지로 두 존재는 구별된다.

 

홍 사장은 생각했다. 지금은 살아있지만, 죽은 다음 자신의 영혼은 이 번호를 기억할까? 자신의 육체에 붙여지고, 자신의 이름 대신 불리웠던 이 번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그런 생각을 하자 슬퍼졌다.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허무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시 적응해야 히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교도관도 바뀌고, 재소자들도 바뀌었다. 감방의 벽도 촉감이 달랐다. 오직 달라지지 않는 것은 인간의 눈빛, 무감각하고 무표정한 눈빛, 사랑이라고는 눈꼽만치도 남아있지 않는 눈빛만이 사방에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낮이고 밤이건, 홍 사장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며 주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홍 사장은 주눅이 들었다.

 

새로운 교도소로 옮겨진 후 일주일이 지나자, 홍 사장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노역을 신청했다. 어떤 종류의 일이라도 하겠다고 했다. 일을 해야만 무기력증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가석방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 비교적 편한 일을 배정받았다. 마당 청소와 정원 관리업무를 맡았다. 처음에는 그 일을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밖에 나가 하루 종일 있어야 했다. 추운 겨울날은 몇 시간씩 밖에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역이었다. 더운 여름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죽을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견뎌야했다.

 

교도소에 들어간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공포에 질려 나올 때까지 벌벌 떨면서 지옥에 들어간 것처럼 지내다가 건강도 잃고 나온다. 다른 부류는 어차피 들어온 것,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순응하면서 열심히 일도 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견뎌낸다. 건강도 지키고, 우울증에도 빠지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교도소 바깥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면서 죽을 생각이나 하면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환경과 운명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다.

 

홍 사장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감방에 있는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생활하게 되었다. 홍 사장은 옛날에 고시공부를 한 적이 있어, 다른 사람의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고, 깊은 관심을 가졌다. 홍 사장 보다 한 달 뒤에 이감을 온 최 씨의 스토리도 진한 흥미를 끌었다. 최 씨의 죄명은 성범죄였다.

 

교도소에서 성범죄자로 징역을 받고 들어오면, 다른 재소자들의 눈에는 매우 한심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바쁜 세상에 먹고 살기 바쁜데, 오죽하면 여자 아랫도리를 건드려서 징역을 사느냐는 식이다.

 

욕정을 참지 못하고 강간한 남자, 술에 취한 여자를 강제추행하고 강간을 시도하다 실패한 남자, 자신의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남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길을 가는 여자 50명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기습적으로 만지고 달아난 오토바이맨, 부하 직원을 위력으로 간음한 직장 상사. 육교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신의 〇〇를 여자에게 보여준 남자에 대해서는 모두 경멸의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홍 사장은 달랐다. 최 씨가 성범죄자라고 해도 사건 내용을 자세하게 알고 싶어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대부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성범죄자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여자와 둘이 있는 상황에서 남자는 순간적인 욕정에 사로잡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왜 그런 상황에까지 갔던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홍 사장은 성범죄자라도 폭력사범이나 뇌물사범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믿었다.

 

어느 날 최고종은 재판을 받으러 나갔다가 돌아와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홍 사장이 위로해줘도 소용 없었다. 고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그 다음 날 고종으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저는 절대로 강간하지 않았어요. 서로 좋아서 한 것인데, 남편한테 들켜서 남편이 죽일 듯이 때리면서 난리를 치니까 자기가 살기 위해서 저를 강간범으로 몰았던 거예요. 정말 너무 억울해요. 이대로 징역을 살 수는 없어요. 차라리 자살을 해서라도 결백을 증명하고 싶어요.”

 

죽으면 안 돼요. 죽는다고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는 건 아니잖아요, 살아서 무죄를 받아야 해요. 내가 도와줄 게요.”

 

홍 사장은 미력하나마 고종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종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파악해야 했다. 고종은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고종 말로는 그 변호사가 돈만 받아먹고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구속되기 전에 불구속으로 조사를 받을 때도 변호사는 이런식이었다.

 

별로 걱정하지 말아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진실은 언젠가 태양 아래 드러나는 거예요. 검사가 무혐의 결정을 틀림없이 할 거니까 나만 믿고 있어요.”

 

나를 믿으라라는 말은 신이나 교주들이 하는 말이다. ‘Believe me!'는 초월적 존재가 인간에게 하는 것이다. 변호사는 그래서 의뢰인에게 나를 믿으라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대신 ’Follow me.' 정도로 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변호사는 고종과 사건에 관한 상의는 별로 하지 않았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피의자로서 조사를 받을 때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조사 받기 전에 어떻게 답변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코치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달 동안 조사를 받다가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영장실질심사 때 변호사는 판사 앞에서 이 사건은 신빙성 없는 여자의 진술밖에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피의자는 도주 우려 없고 증거인멸 우려도 없습니다. 불구속수사를 받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는 식으로 아주 간단한 변론만 했다. 너무 간단해서 1분도 안 걸렸다.

 

고종은 변호사 실력만 믿고, 구속영장이 당연히 기각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중요한 비지니스 미팅 약속도 잡아놓았다. 변호사 말로 영장은 저녁 6시 전에는 반드시 기각될 것이니, 8시 이후에는 약속을 잡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전 10시에 실질심사를 받았는데, 오후 830분 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길로 곧 바로 구치소로 직행했다. 그 후 구치소로 접견을 온 변호사는 고종뿐 아니라, 다른 피의자들 여러 사람의 사건을 맡아서 고종을 접견하는 시간은 10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고종에게 담당 판사가 이상한 사람이라 영장이 잘못 발부된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구속적부심사나 보석을 통해 곧 석방시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면서 큰소리로 웃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너무 큰 소리로 환하게 웃었기 때문에 접견실에 있던 다른 죄수나 변호사들이 볼 때에는 고종이 곧 석방되어 나가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홍 사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 남의 일이지만 흥분했다.

 

도대체 요새가 어떤 세상인데, 그런 나쁜 변호사가 있다는 말이요. 가만 두어서는 안 되겠네.”

아무래도 변호사를 바꿔야 할 것 같아요. 근데, 변호사를 바꾸면 저에게 불리하게 해꼬지를 하지 않을까요? 걱정 돼요.”

 

그 변호사 이름이 뭐지?” 고종이 변호사 이름을 듣자, “가만 있어보자,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홍 사장은 감방 벽에 그 변호사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고종에게 보여주었다.

이 변호사 이름이 확실한 거요?”

, 맞아요. 여기 그 변호사 이름이 써있네요.”

 

고종은 벽에 쓰여 있는 글씨를 읽었다. 어떤 죄수가 써놓은 것이었다. 내용인즉, ‘조악덕 변호사! 아주 악질임. 절대 선임해서는 안됨!!!’이었다. 감탄사 느낌표가 세 개나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정말 악질적인 것 같았다.

 

홍 사장은 구치소와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벽에 이와 같이 변호사를 비난하고 욕하는 글씨를 써놓은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자신이 선임한 변호사가 제대로 하지 않아 결국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취지로 낙서를 해놓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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