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시장이 뇌물을 먹고 감방에 들어오다

 

이렇게 해서 고종은 재판까지 넘어온 것이었다. 1회 공판이 끝난 다음, 고종의 가족이 등산회 회원들을 만나 사건의 진상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늦은 감은 있었지만, 뒤늦게나마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서서 협조를 해주었다. 회원들은 숙정과 고종이 그동안 등산회에서 어떻게 친하게 지냈는지 여부, 두 사람이 애인처럼 보였다는 사실을 사실확인서로 써주었다.

 

그렇게 하던 중 우연히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회원은 등산회 창립멤버로서 등산팀장이었다. 사건 당일 그는 전체 회원 동향을 살피고 있었는데, 후미에 처진 숙정과 고종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두 사람을 찾아 나섰다. 두 사람 모두 핸드폰을 받지 않고 있어 혹시 무슨 사고가 났나 싶어서 등산로 주변 샛길을 살펴보았다.

 

팀장은 숲 속에서 두 사람이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처음 멀리서 볼때는 여자가 밑에 깔려있고, 남자가 등산복 차림으로 위에 올라타고 있어 살인이 벌어지고 있나 싶어 크게 놀랐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니까 여자는 황홀경에 빠져 주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팀장은 몰래 사진을 찍어놓았다. 재빨리 현장에서 떠나 등산대열로 돌아왔다. 30분쯤 후에 숙정이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진동으로 해놓아서 못 들었어요.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이제 제대로 찾아가고 있어요.”

두 사람은 몸을 풀어서 그런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산에서 내려올 때에도 굉장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팀장은, ‘내가 10년 동안 등산을 다녔지만, 이렇게 등산 도중에 회원들끼리 몰래 숏타임하는 건 처음 봤다.’고 혀를 찼다. 이 팀장은 나중에 고종의 가족으로부터 사건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핸드폰으로 찍어 보관하고 있던 그 사진을 주었다.

 

팀장으로부터 사진을 넘겨받은 고종의 가족은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면서 고종에 대한 보석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이와 같은 결정적인 증거자료가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종에 대한 보석을 해주지 않고 계속 구속상태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재판이 있나요? 이 사진을 보면, 제가 숙정이라는 여자와 서로 합의해서 관계를 한 것이고, 그 후 모텔에 같이 간 것도 당연히 합의정사에 해당하는 것이 분명한데, 아직도 제 말을 진실이라고 믿지 않고 있는 거예요.”

 

홍 사장이 보기에도 고종은 참 억울해 보였다. 홍 사장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에도 긴 겨울이 물러가고 있었다. 그토록 맹추위를 자랑하던 동장군도 계절이 바뀌면서 완전히 꼬리를 내렸다. 남쪽 지방에서는 벌써 매화가 만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밖에서는 3.1절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100년 전인 1919년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제히 ‘대한 독립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나서 곧 바로 수많은 애국지사가 투옥되었다.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감방 생활을 했을 것이다. 지독한 추위와 타는 듯한 무더위를 견뎌야 했고, 가혹한 고문을 받았고, 영양실조에 걸릴 수밖에 없는 콩밥을 먹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조국을 위해, 민족을 위해 결연하게 독립운동을 했다.

 

그런데 홍 사장은 지금 사기죄로 감방에서 고생을 하고 있다. 애국지사와 비교해 볼 때, 자신은 너무 초라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방안은 또 술렁였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베트남 하노이에서 회담을 했는데, 아무런 합의도 도출하지 못하고 끝냈다는 것이었다.

 

감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 경제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시시각각으로 팔로잉하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할 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 자기 자신의 코가 석자이기 때문에 뉴스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못한다.

 

그 무렵 홍 사장 교도소에 어느 중소 도시의 시장이 수감되어 들어왔다. 사람들은 현직 시장이 구속되어 들어오자 매우 흥미롭게 사건 진행상황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권 시장은 재선에 성공한 시장이었다. 그 지역에서 건설회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이었는데, 주변에서 부추겨서 출마했는데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었다.

 

나름대로 지역의 경제발전에 기여를 많이 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두 번째 시장 선거에 출마해서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겨우 당선되었다. 낙선된 상대 후보측에서 조직적으로 시장의 비리를 찾아내서 제보를 하였고, 지역 검찰청에서는 특별수사를 했다. 그 결과 시장이 외부 브로커를 시켜서 관급공사를 수주하게 해주는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시장과 브로커는 뇌물 받은 사실이 없다고 극구 부인하였지만, 공여자 측에서 신빙성 있는 진술을 하였고, 검찰에서는 이에 부합하는 상당한 양의 정황증거를 확보했다. 법원에서는 구속영장을 발부하였고, 시장은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선거로 뽑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는 뇌물죄로 구속되어도 국회의원직이나 시장 군수직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대법원까지 가서 판결이 확정되어야 그때 비로소 공직이 박탈된다. 그러니까 권 시장은 구속되었어도 교도소 안에서 그냥 시장으로서 결재를 하게 된다. 시청 직원들은 교도소까지 면회를 와서 시장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야 한다.

 

참 이상한 풍경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달랐다. 변사또가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춘향에게 숙청을 들라고 강요하다가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출현해서 감방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사또에게 행정결재를 받으러 다닌다면, 이몽룡이 가만 두지 않았을 것 아닌가?

 

자유민주사회에서는 뇌물죄로 재판받는 시장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감방에 들어가 비참하게 된 시장에게 시청의 국과장들이 결재를 받으러 가야 한다. 면회 가서도 깍듯이 ‘시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빨리 무죄를 받고 나오세요. 모든 시민들이 시장님의 억울함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늘 결재는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시민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이런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려고 합니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이 21세기의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시장과 같은 고위공직자가 수사 대상이 되면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대하는 태도도 180도 달라진다.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시장으로 대우해주지 않는다. 속으로 경멸하며 막 대한다. 사건 취재를 하는 태도도 매우 다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오직 형사소송법에서만 존재한다.

 

포토라인에 서면 세상 사람들은 이미 그 공직자는 끝났다는 선입관을 가진다. 그토록 사회적으로 저명인사였고, 겉으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었지만, 일단 수사대상이 되고 구속되면 그의 인생은 끝난다. 깊은 심연의 계곡 아래로 추락한다. 많은 공직자들이 포토라인에 서서 검사실로 들어가기 전에는 큰소리를 친다.

 

“검찰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저는 일원 한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만일 받았다면 할복을 하겠습니다.” “모든 진실은 검찰수사로 명확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검찰조사를 마치고 영장이 발부되어 구치소로 수감되는 검은 색 승용차를 타는 순간의 표정은 그야말로 초라하고 비참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한다. 고위공직자는 그동안 세상이 얼마나 무섭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공직자 자신이 일반인에게 무서움을 주는 가해자의 조직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반대 입장에서 무서움을 당하는 피해자 내지 약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세상의 무서움’을 전혀 느낄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었다.

 

세상이 무섭다는 것은 군 사병으로 입소해 보면 대번 느낀다. 어느 날 갑자기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가슴에 번호만 달고 내무반 침상에 일렬로 누워있으면,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개인은 얼마나 초라하고 무기력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된다.

 

권 시장도 마찬가지다. 건설회사 사장으로 있을 때, 시장 선거운동을 하러 다닐 때, 그리고 시장으로서 폼을 잡고 있을 때에는 세상은 별 거 아니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 ‘용기를 가지고 자신감을 가져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라.’ 이런 식의 생각을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늘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인간세계는 무섭다. 약육강식의 세상이고, 한번 추락하면 동물 취급을 받는다. 고위공직자는 그래도 한 동안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수갑을 차고 구치소에 들어가 신체검사를 받고 수감번호를 부여받고 죄수복을 입고 감방에 들어가도 자신이 아직도 시장이기 때문에,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착각한다. 교도관조차도 현직 시장에게 신경을 써서 예우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인심은 그렇지 않다. 더 무시하고 더 경멸한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던지는 돌은 아프다. 그 돌은 몸에 맞을 뿐 아니라, 심장 속까지 던져진다. 동물로 전락하면서 추악한 존재에게 던져지는 세속적인 인간의 차가운 냉소의 시선과 조롱의 언사는 그야말로 대상자에게 인격적 살인을 하는 것이다.

작은 운명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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