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위기에 처한 피의자의 죽을 것 같은 고통

 

명훈 아빠는 계속해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시청 건축과장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에 대해 추궁을 받았다. 명훈 아빠가 최 과장과 자주 만나고 식사를 한 사실과 명훈 아빠가 객관적으로 허가를 받기 어려운 장례식장 건축허가를 받은 사실에 대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제보를 한 것이었다.

 

검찰에서 명훈 아빠 회사에 대해 특별수사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변 사람들은 이때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추가로 제보를 하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남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이 망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이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되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아는 사람이 구속되어 구치소로 향하는 뉴스가 나오면, ‘저렇게 잘난 척하더니 잘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검사는 명훈 아빠와 건축과장을 둘러싼 많은 의혹에 관한 제보는 받았지만, 막상 당사자들을 조사해보니 두 사람 모두 완강하게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었다. 검사는 제보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고 확실해서 강한 심증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런 상태에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검사는 두 사람의 핸드폰 통화내역과 은행계좌 거래내역, 건축허가 관련 서류 등을 모두 압수하여 조사를 벌였다. 더 나아가서 최 과장이 처리한 건축허가건을 모두 들여다보았다. 특히 민원이 많은 장례식장에 대해 왜 건축허가를 내주었는지에 대해 허가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검찰에서는 회사의 자금의 흐름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었다. 컴퓨터와 핸드폰이 모두 압수됨으로써 그 안에 들어있는 자료가 모두 검사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명훈 아빠가 여러 여자들과 주고받은 내용이 들어있어 수사관들이 읽어보면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야한 동영상과 여자 나체사진, 성관계장면을 다운받아 놓은 것도 있었다. 개인의 사생활이 속속들이 까발려지는 것이 수사과정이다.

 

이렇게 계속된 조사를 받다보니 명훈 아빠는 지치고 말았다. 더 이상 검사와 싸울 힘이 없어졌다. 검사는 끝장을 보려고 마음 먹은 것 같았다. 회사는 엉망이 되었다.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일부 직원은 자신도 문제가 될까 걱정이 되어서 그런지 사표를 내고 출근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직원은 아예 전화도 않았다. 세상은 이렇게 비정한 것이다.

 

TV를 켜니, 승객 157명을 태우고 에티오피아를 떠나 케냐 나이로비로 향하던 에티오피아항공 여객기가 이륙한 지 6분만에 추락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6.25 전쟁 때 한국에 파병을 했던 참전국이다. 명훈 아빠는 생각했다.

 

‘아! 사람의 운명은 저렇게 한 순간에 끝날 수 있구나. 그 비행기에 탔던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사고가 자신이 탄 비행기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라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일 텐데, 얼마나 억울할까? 남은 가족들은 그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견뎌내며, 또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명훈 아빠는 채널을 돌렸다. CCTV에서 어떤 남자가 주먹으로 붉은 벽돌을 격파하고 있었다. 대리석도 격파했다. 그의 손을 보여주는데 크고 아주 딱딱하다. 마지막으로 손으로 나무에 대못을 박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나무에 대못을 조금 박아놓고, 오른 손 바닥으로 대못을 끝까지 박았다. 그 다음에는 오른 손 등으로 대못을 박는데, 망치로 자신의 오른 손 등을 쳐서 대못을 끝까지 박는 것이었다.

 

어떤 여자는 9살 때 시작해서 18년 동안 훈련을 했다는데, 네모난 유리 상자를 바닥에 놓고 뒤로 머리부터 박스 안에 들어가 온 몸을 구부려서 집어넣었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들이었다. 그런데 명훈 아빠는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다. 오직 수사대상에 불과한 껍데기 존재였다. 명훈 아빠는 담당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님. 일부 혐의사실을 자백하고 수사를 빨리 끝내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글쎄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예요. 검찰 특별수사는 아무런 제한이 없기 때문에 검사가 독하게 마음먹고 계속 들이파면 골치 아픈 거예요.”

 

“범죄사실을 시인하면 검사가 곧 바로 구속영장을 치지 않을까요? 구속되면 안 되잖아요? 차라리 지금 단계에서 어디 가서 숨어있으면 어떨까요? 지금 제 사건을 맡고 있는 박 검사가 정기인사 때 다른 곳으로 가면, 그때 가서 자수를 하면 안될까요?”

 

“글쎄요. 다음 정기인사 때 박 검사가 다른 곳으로 갈 것은 같아요. 그러나 도망가면 지명수배 되고 기소중지될 거예요. 그러면 회사는 어떻게 하려고요?”

“회사는 제가 구속되나 도망가 있으나 힘들어 지는 건 마찬가지예요.”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지만, 도망간다는 것도 어렵고, 구속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에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작은 운명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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