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를 놓고 친구끼리 혈투를 벌이다

 

백미는 원홍을 냉정하게 쳐다본 다음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백미는 흥분해서 이런 사실을 FM 멤버들에게 세 시간에 걸쳐서 순차로 1인방송을 했다. 다만 세미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에게도 이 쇼킹한 뉴스는 우리끼리만 알고, 세미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했다. 세미가 너무 충격을 받을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백미는 원홍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무래도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 할 것 같았다.

 

저에게 관심 갖지 마세요. 저는 원홍 씨에게 아무 느낌이나 감정이 없어요. 이미 종범 씨를 만나고 있어요. 원홍 씨는 세미와 만나다가 갑자기 친한 친구인 저에게 이러시면 안 돼요. 뿐만 아니라,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도대체 세미와 헤어졌으면 그만이지, 왜 저를 좋아한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두 번 다시 저에게 신경 쓰지 마세요.’

 

원홍은 이런 치욕적인 말을 들어도, 자기 자신을 어떻게 콘트롤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정신적 질환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는 세미를 참 좋아했다. 자신의 이상형이었다. 세미는 모든 것을 갖춘 여자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만났기 때문에 순수한 사랑을 했다고 믿었다. 세미를 만날 때, 다른 여자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 어떤 여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홍은 시를 좋아했다. 세미도 시를 좋아했다. 두 사람은 강변에서 낙엽이 날릴 때, 아름다운 시를 써가지고 와서 두 시간 동안 계속해서 서로에게 낭송을 해주었다. 원홍은 그 때문에 50여편의 시를 완전히 암송까지 했다.

 

두 사람은 또 음악도 좋아했다. 특히 클래식을 좋아했다. 강변에서 시를 읽고 나서, 스마트폰으로 클래식을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음악의 세계에 빠져들어갔기 때문에, 옆에 누가 있는지도 잊어버렸다. 시와 음악으로 두 사람은 이심전심이 되었다. 그 때문에 원홍은 젊은 나이에 솟구치는 욕정을 승화시킬 수 있었는지 모른다.

 

원홍은 종교적 신념과 가정 분위기 때문에 혼전 순결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건 단순한 믿음이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순결의 가치를 설명해준 것도 아니었다. 순결하지 않으면, 사랑의 순백은 더럽혀진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따지지 않았다.

 

공부만 열심히 했다. 남에게 지기 싫었다. 그래서 명문대 의대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세미만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날 세미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세미와 합일하기로 했다.

 

대학생활을 해보고, 친구들과 이야기 해보니, 요새 젊은 여자들이 고등학교 때 이미 첫경험을 하고, 더군다나 대학교에 들어가면 1~2학년 때 관계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세미도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문에 조바심이 났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원홍 자신이 먼저 세미를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원홍은 고등학교때부터 세미와 연애를 했고, 그 동안 세미가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연히 처녀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전혀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원홍은 세미에게 용기를 내서 순결을 달라고 했다 세미도 별 거부반응없이 응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어느 날 모텔에 가서 첫날밤의 의식을 치뤘다.

 

원홍은 의대생이었기 때문에, 이 성스러운 의식을 위해 많은 공부를 했다. 처녀와 처녀막에 대해서, 그리고 첫경험에 대해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논문도 찾아봤다. 하지만, 생각보다 순결이나 처녀성, 처녀막에 대해서는 별로 많은 자료가 없었다. 오히려 처녀막에 대한 오해, 그릇된 편견을 비판하는 글이 많았다.

 

특히 외국에서는 처녀막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소설, ‘주홍글씨, ‘테스시대에서나 논의되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인터넷에서는 처녀막재생수술을 잘 한다는 병원 의사들의 광고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처녀막을 파열시키면 상해죄에 해당한다는 괴상한 법률해석도 보였다.

 

의대에 들어가 처음 배우는 해부학에서도 기본적인 뼈나 장기, 혈관등은 강의를 해도 처녀막 이야기는 없었다. 혹시 결혼하지 못하고 처녀로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여자의에게는 처녀막이 파열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사체가 해부용으로 대학병원까지 온다는 것은 기대가능성이 제로였다.

 

생전에 장기를 기증한다고 해도, 안구나 콩팥은 해도, 처녀막을 기증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설사 있다고 해도 병약한 사람이 남의 처녀막을 기증받으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죽을 때 처녀막이 남아있다는 사실 역시 그 본인에게도 크게 자랑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홍은 비뇨기과를 전공하는 선배와 산부인과를 전공하는 선배 두 사람에게 질문을 했다.

 

처녀막은 성관계를 하지 않아도 파열이 가능한가요?” 두 선배 모두 똑 같이 대답했다. “글쎄,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성관계를 하지 않고 파열되는 경우는 백만불의 일의 확률이라고 해.”

. 그렇군요.”

그런데 왜 처녀막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지?”

결혼할 여자가 처녀가 아니면 안 되잖아요?”

요새가 어떤 세상인데, 그렇게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고 사니? 그러면 장가 못 가. 그리고 결혼해도 오래 못 살아. 섹스는 단순히 신체의 생리작용일 뿐이야. 사랑이 중요한 거지. 성격이 중요한 거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미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한 여자는 더럽혀진 거잖아요. 제가 왜 굳이 그렇게 더렵혀진 여자를 사랑하고 책임져야 해요?”

너처럼 잘못 생각하고 망한 사람들 많아. 그럼 너는 숫총각으로 결혼할 거니?”

물론이지요. 저는 절대로 이 여자, 저 여자와 지저분하게 성관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 네 마음대로 해, 아무도 참견하지 않아. 단지 그런 고정된 성개념으로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지는 마.”

 

원홍은 백미에 대한 짝사랑에 빠졌지만, 백미가 원홍을 정신이 이상한 사람을 하자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고 혼자서는 백미를 끊지 못하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학교 공부도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인 종범과 해성과도 사이가 나빠졌다. 친구들 역시 원홍을 사이코 내지 의리 없는 이기주의자라고 보았다.

 

하지만 원홍은 백미를 잊을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수 없었다. 이상한 이끌림이었다. 온통 백미의 얼굴, , 체취, 동작, 음성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면서 운명적으로 백미는 자신의 여자라는 믿음에 빠졌다. 매일 저녁 자기 전에 백미와 자신의 결합을 증명하는 붉은 잉크로 쓰여진 처녀보증실크를 왼쪽 가슴에 대보았다.

 

주기적으로 백미를 멀리서나마 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백미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백미 집 부근과 백미의 캠퍼스를 쫓아다녔다. 이른바 스토커로 전락한 것이었다. 원홍은 그런 자신이 싫었다. 어떤 때는 죽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자신이 명문대 의대생으로서 왜 이렇게까지 추락했는지 몰랐다.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부모님께도 미안했다. 하지만 아무런 해결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원홍은 백미의 집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시간 넘게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택시에서 종범과 함께 내리는 것이었다. 종범은 백미의 허리를 껴안고 부축하고 있었다. 백미는 완전히 술에 취한 상태였다. 원홍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다. ‘저런 나쁜 O! 내 여자를 술에 취하게 하고, 껴안다니!’

 

갑자기 뛰어나가 종범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종범은 즉시 반격했다. 두 사람은 서로 때리고 차고 싸움을 했다. 백미는 울면서 땅에 주저앉았다. 밖에서 소동이 벌어지자 백미 오빠가 뛰어나왔다. 오빠는 싸움을 말린 다음, 두 사람을 집으로 끌고갔다. 백미와 종범, 원홍은 오빠 앞에서 모두 죄인이 되었다. 오빠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백미에게 말했다.

 

이런 나쁜 인간들은 절대로 만나지 마라. 만일 앞으로 이 인간들을 만나면 집에서 쫓겨날 줄 알아라.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계집애가 무슨 남자를 안다고, 그것도 두 놈이나 끼고 돌아다니냐?”

너희들은 친구라면서 한 여자를 놓고 할 일이 없어서 삼각관계로 결투나 하고 있냐? 네놈들 때문에 이제 우리 집은 몸파는 창녀가 산다고 소문이 나게 생겼어. 여대생인 줄 알았는 데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붙어다니는 고급 매춘부라고 소문나면 우리는 외국으로 이민가야 해! 이 나쁜 자식들아!”

 

원홍은 남자들이 한 여자를 두고 싸웠다고 왜 갑자기 창녀나 매춘부 이야기가 나오는 지 어리둥절했다. 오빠는 너무 화가 나고, 동네에서 창피해서 그런지 피도 나고 상처를 입은 종범과 원홍을 닦아줄 생각도 하지 않고, 곧 바로 내쫓아버렸다. 다만, 두 마리 인간을 동시에 내보냈다가는 또 백미의 집 앞이 석양의 무법자결투장이 될 것이고, 그래서는 동네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종범을 먼저 내보내고, 10분 있다 원홍을 나가도록 명령했다.

 

법정에서도 범인과 피해자를 재판이 끝나고 동시에 나가도록 하면 법정을 나가자 마자 두 사람은 고함을 지르면서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운다. 감정이 순간적으로 폭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순차로 내보내진다. 오빠도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두뇌가 명색해서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이다.

 

종범이 먼저 밖으로 나가자 원홍은 곧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형님! 백미 씨는 제 사람입니다. 저는 절대로 백미 씨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형님께서 도와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오빠는 기가 막혔다. 공수부대 출신으로 성격이 매우 거칠었다. 친구들은 체중을 늘리거나 줄이고, 병을 새로 만들거나 최대한 찾아내서 군대 면제받고 곧 바로 공무원이 되어 폼잡고 있을 때, 부모님이 목숨 걸고 반대함에도 공수부대를 자원해서 들어갔다. 그 어려운 공수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뿐 아니라,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강하훈련을 많이 해서 정의롭지 못한 인간들을 보면 주먹부터 올라갔다. 공수부대 출신이라 원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주특기인데, 오빠는 이상하게 주먹부터 먼저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백미를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아끼고 아꼈는데, 이런 지저분한 인간들이 철부지 동생을 놓고 추태를 부리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두 놈 다 급소를 찔러서 고자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래도 의대생이라고 하니까 나중에 불쌍한 환자들을 의해 의료봉사를 하라고 봐준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신 같은 놈이 빨리 나가지 않고 백미가 자기 사람이라고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부엌으로 가더니 식칼을 들고왔다. 칼을 오른손으로 높이 들더니, 허공을 향해 세 번 돌렸다. 그런 다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원홍에게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원홍은 숨이 막혔다. 오빠 눈에는 살기가 돌았다. 열흘 동안 굶고 쓰러지기 직전에 얼룩말의 목덜미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는 숫사자의 눈빛보다 더 강렬했다. 원홍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도망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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