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장관님과의 추억
나는 1998년 8월 검사생활을 마치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당시 서초동에서 작은 사무실을 얻어 혼자서 직원 2명과 함께 변호사업무를 하다보니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변호사는 사건에 대해 사실상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한다. 직원들이 도와주는 것은 단순한 보조업무에 불과하다.
법정에 나가는 일, 사건당사자들을 만나는 일, 구치소에 가서 구속된 사람을 접견하는 일, 세금을 내는 일, 직원들 지시감독하고 월급 주는 일, 사무실 임대료 주는 일 등등...
법무법인 형태가 아니고 혼자 단독으로 개인사무실을 운영하는 변호사는 정말 할 일도 많고 바쁘다.
그래서 나도 개업하고 몇 달 동안은 점심 식사를 밖에 나가 하지 못했다. 대신 사무실에서 토스트를 구워서 커피와 같이 먹었다.
변호사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변호사는 그야말로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누가 월급 주는 것도 아니고,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쁜 상황에 나는 1999년 출범한 여성부(지금은 여성가족부로 바뀌었다) 소속 남녀차별개선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위원장은 초대 여성부장관이었던 한명숙 장관님이었다. 위원은 모두 10명이었는데, 여성 위원이 7명, 남성 위원은 3명이었다.
남녀차별개선위원회는 성차별과 성희롱사건을 심의 의결하는 기구였다. 당시 전국에서 올라오는 중요한 성차별사건과 성희롱사건을 조정하거나 처리했다.
나는 이 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성차별과 성희롱에 관해 많은 공부를 했다.
위원회 회의를 통해 나는 한명숙 장관님을 자주 볼 기회를 가졌다.
장관님께서 회의를 주재하면서 여성의 법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성부를 이끌어가는 묘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한명숙 장관님을 존경했다.
나는 남녀차별개선위원회가 출범할 때부터 위원회가 해체될 때까지 쫓겨나지 않고 계속해서 위원으로 활동했다. 자료에 의하면, 남녀차별개선위원회는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1999년 7월부터 2005년 5월까지 1116건을 처리했다고 한다
2005년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서 담당하던 <성차별, 성희롱>사건 처리업무는 국가인권위원회로 이관되었다. 나는 당시 다시 국가인권위원회 <성차별 성희롱조정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어 한 동안 활동했다.
어제 법무부에서 정부포상 전수식에 가서 황은영 검사님을 만났다. 내가 여성부 위원으로 일할 당시, 황은영 검사님은 현직 검사로서 여성부에 파견근무를 하고 계셨다.
무척 반가웠다.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같이 일을 했던 분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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