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핀 여자가 이혼을 결심하고 혼자 살기로 마음 먹다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앉아도 되느냐는 것이었다.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인상이 착해보였다. 여자는 남자 친구가 배신해서 슬프다는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인지 듣고 싶었다. 여자는 28살이었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같은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1년 넘게 연인으로 지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너무 속이 상해요. 그래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속이 상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괜찮아요?”
“남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해요.”
“왜요?”
“새로 생긴 애인이 저와 완전히 끊으라고 했대요. 그래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거예요.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예요?”
경희는 조용히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상한 건 그 여자의 말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문제가 뭐 그렇게 심각한 것이냐? 세상에는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수시로 발생하는지 아는가? 그 정도 일은 아무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와 여자는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고, 파트너가 바뀌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싶었다.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회적 구속을 받는 것도 아닌데, 미혼의 남녀가 헤어지는 문제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었다.
잠시 술기운에 잊고 있었던 경희의 처지가 다시 그 여자의 말 때문에 클로즈업되었다. ‘아! 남녀간의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구나!’ ‘나도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결혼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일단 결혼했으면, 참고 살 것을...’
사랑이 괴로운 것은 본질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무조건 행복만 보장되는 사랑은 없다. 진정한 사랑이란 처음에 얻는 과정도 고통스럽고, 일단 얻어진 다음에도 수시로 크고 작은 마찰과 갈등이 반복된다. 더군다나 그 사랑이 시간이 가면서 흔들거리고, 제3자가 개입되면 폭풍에 휩쓸리게 된다.
“남자가 끝내 헤어지자고 하면 방법이 없잖아요?”
여자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마디 했다. 별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그냥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근데 너무 억울해요. 그 남자 때문에 아이도 한번 지웠어요. 그래서 몸도 안 좋아졌고, 같은 직장에 있는 다른 여자에게 남자를 빼앗긴다는 것도 분하고. 그냥 포기하자니 아깝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직장에서 연애를 하고 있는데, 같은 직장의 다른 여자에게 애인을 빼앗기면 분하고 억울할 것이다. 그 말에는 동의했다.
“그래도 잊어버려야지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을 다시 붙잡을 수 없는 거 아닐까요? 굳이 강압적으로 붙잡아봤자 결혼할 수도 없을 거고. 안 그래요?”
“저도 알아요. 지금 와서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걸. 그래도 제 마음을 쉽게 잡을 수 없어요.”
그 여자는 남자와 새 애인에 대해 복수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복수는 쉽지 않다. 무슨 방법으로 복수를 할 수 있을까? 배신당한 사람들은 복수를 꿈꾼다. 사회적으로 체면 있는 사람 같으면 직장을 찾아가 망신을 주려고 한다.
특히 공무원이나 교사,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아니면 직장에 투서를 한다. 그 사람의 비행에 대해 진정서를 내기도 하고, 사생활이 복잡하다거나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렸다는 내용으로 써서 낸다. 상급자를 찾아가서 호소도 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모두 옛날 방식으로, 오늘날에는 별로 효과도 없고 통하지도 않는다.
경희는 하는 수 없이 모텔로 들어갔다. 새벽 3시가 되었다. 밖에서는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사람에게 잠자리가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갈 곳이 없다는 것! 사람이 머리 둘 곳이 없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 비참한 줄 몰랐다.
카운터 직원부터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이 늦은 시간에 여자 혼자 말짱한 정신으로 모텔방으로 들어오니 이상해보인 모양이다. 경희는 모텔방에 들어가서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옆방에서는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경희에게 그 소리는 징그러운 동물의 소리였다. ‘아! 내가 바로 저 소리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구나.’
경희는 깨달았다. 인간에서 섹스란 정말 허망하고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일시적인 사랑이라는 감정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환각적인 감상일 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 어떤 사랑도 가정이라는 둥지를 깨드릴만한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사실 앞에서 울음을 떠뜨렸다.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지내던 나만의 둥지가 그렇게 소중했다. 이제는 모든 남자가 싫었다. 경희에게 지금 남자라는 존재는 자신과 다른 형태의 성기를 가진 괴물에 불과했다.
경희는 굳게 다짐했다. 내일 날이 밝으면 남편을 만나서 이혼을 요구하기로 했다. 모든 조건을 감수하고 이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기로 했다. 더 이상 구걸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모두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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