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애인이었던 남자가 유부녀의 과거를 가지고 협박을 하다
경희는 지금 지구상에서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외로운 별의 신세가 되었다. 그처럼 좁게 느껴졌던 서울이 막상 이렇게 되니 그렇게 넓고 황량한 사막처럼 느껴질 수가 없었다. 경희는 자신의 별을 찾아보았다. 그 어느 곳에도 경희의 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경희의 별은 이미 폭발하여 지상으로 추락하는 아주 작은 별똥이었다.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순식간에 벌어지고, 그 대가는 가혹하다. 갑자기 이 세상에서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떨어진 것처럼 주변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린다. 아무와도 전화하기도 싫고, 상의할 사람도 없어진다.
그렇다고 혼자 술을 마시거나 차를 마실 마음도 사라진다. 오직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순간적으로 깊은 계곡, 그것도 만년설이 쌓인 눈속으로 추락한 작은 존재는, 자신의 운명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그 작은 운명을 손에 쥐고 조용히 작은 존재로 살았어야 하는데, 그 영역을 벗어난 것이 문제였다.
신이 부여한 작은 영역을 벗어난 대가는 아주 참혹했다. 에덴의 동산에서 모든 실과는 아무리 먹어도 좋았다. 하지만 신이 금지한 선악의 나무에는 가까이 가지 말았어야 했다. 금단의 경계를 무시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선악과를 땄다.
냄새를 맡아보고, 입에 넣었다. 혀로 맛을 느끼고 삼켰다. 순간 황홀했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형벌이 내려졌다. 에덴의 동산에서 추방됨과 동시에 인간으로서 모든 짐과 멍에를 걸머지게 되었다.
경희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부여된 육체를 허용된 영역 밖으로 내던졌다. 그곳에서 금지된 쾌락의 시간을 가졌고, 아주 짧은 쾌감의 맛을 보았다. 그런 정상적인 영역에서 일탈한 쾌락과(快樂果)가 내포하고 있는 형벌의 의미를 전혀 모른 채, 경희는 지금 실과 하나를 따먹은 죄로 지옥의 문턱에 던져진 것이었다.
경희는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그랬다. 특별한 걱정이 없었다. 어제 밤에 잠도 잘 잤다. 몸 컨디션도 좋았다. 남편은 보통 기분으로 출근했다. 아이도 어린이집에 보냈다. 혼자 있다가 화장을 하고 외출해서 영식을 만나 점심 식사를 하고 모텔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모텔에서 뜨거운 정사를 벌였다. 오래 반복된 행위였지만, 아직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남편이 흥신소를 통해 미행을 했고, 모텔 방에 들이닥쳐 불륜의 현장을 잡은 것이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려고 시도했지만, 남편은 비밀번호 이외에 안에서 단단히 걸어 잠그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희는 식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4시간 오픈하는 카페로 갔다. 혼자 커피를 시켰다. 지금 이 시간, 이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 상의를 해야 하나? 친정집에는 연락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실망할까? 지금까지 친정 부모는 경희가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였다.
겉으로는 생충도 처갓집에 잘 했다. 경희와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처갓집 식구들에게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생충은 결혼할 무렵에는 경희를 무척 좋아했다. 경희가 얼굴도 예뼜고, 미술을 전공해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경희 아버지가 재력이 튼튼한 사업가였기 때문에, 돈도 넉넉하게 대줄 수 있었다.
문제는 결혼한 다음, 6개월만에 터졌다. 결혼하기 전에 오래 사귀던 남자가 계속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고, 경희도 하는 수 없이 그 친구를 만났다. 그랬더니 그 남자 친구는 왜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느냐고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경희는 기가 막혔다. 당시 경희와 그 남자 친구는 1년 정도 사귀었다. 그 친구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가버렸다. 그 친구가 먼저 연락을 끊었다. 경희로서는 더 이상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경희도 그 친구를 포기했다. 다른 남자들과 연애를 하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3년 정도 있다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선을 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신랑, 생충이었다. 그런데, 그 결혼 전 남자 친구가 경희가 결혼한 지 6개월만에 불쑥 나타나서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경희의 과거를 남편에게 폭로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나를 배신하고 다른 놈과 결혼할 수 있어? 너는 낙태까지 했잖아? 내가 그렇게 반대했는데, 네가 혼자 낙태수술을 했던 거야. 지금 생각하니, 너는 나와 결혼할 생각도 전혀 없이 나를 데리고 놀았던 거야. 그래 지금 나는 이렇게 비참하게 됐는데, 너 혼자 좋은 놈 만나서 행복하게 살면 다야! 그러면 내 인생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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