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앞에 서다>

 

다시 가을이 왔다. 가을은 아무 소리 없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느 날 갑자기 새벽잠에서 깨어나 바람소리를 듣고 가을이 왔음을 알았다. 가을 앞에서 나는 숙연해진다. 가을이 가르쳐주는 소중한 교훈을 되새겨본다.

 

가을은 자연의 풍성함을 일깨워준다. 가을에는 들판을 가득 채운 벼의 황금물결을 볼 수 있다. 여름 내내 땀 흘려 가꾸어놓은 농사일의 수확을 거두는 계절이다. 지금 밖에는 사과가 익어가고 있고, 감이 색깔을 변화시키고 있다. 곧 붉은 색과 노란 색의 과일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리게 될 것이다.

 

가을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가을에는 무성했던 잎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그토록 화려했던 봄날의 꽃들도, 여름날의 나뭇잎들도 가을 앞에서는 다 무력해진다. 가을바람은 모든 것을 일거에 쓸어가 버린다. 남는 것은 들판의 황량함과 그 속에서 흘리는 나그네의 고독한 눈물뿐이다. 가을은 이토록 교만한 사람을 일깨워주는 시간이다.

 

가을에는 많은 사랑이 떠난다. 자연스러운 이별을 한다. 너무 깊이 사랑했던, 그래서 도저히 헤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이 가을 앞에서는 소나기를 맞은 숯불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모든 것이 가을 탓이다. 인간의 연약한 운명의 한계를 느끼며, 그 때문에 사랑의 가치도 상실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사랑을 오래 간직하려면 오히려 가을에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가을은 곧 겨울을 예고한다. 첫눈이 내리면 우리는 다시 외투로 몸을 감싸며 삶의 온기로 우리의 가슴을 감싸게 된다. 눈사람을 만들며 우리는 그 속에 사랑을 감출 것이다. 눈밭을 뒹굴며 허공에 외칠 것이다. 사랑을 영원히 별에 묻어두기 위해서 우리는 밤이 새도록 별을 볼 것이다. 별을 향해 우리의 영혼을 던질지도 모른다.

 

간밤에도 풀벌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주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그 소리는 벌레소리라기 보다는 사랑의 소리였다. 온화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사랑을 하라는 자연의 언어였다.

 

우리는 너무 세속적인 것들에 정신이 팔려서 풀벌레소리가 전하는 의미를 해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가슴을 열자.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떠보자. 무엇인가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가? 무엇인가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지 않은가?

 

가을에는 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단풍을 보자. 그리고 낙엽을 밟으며 시를 써보자.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시상들은 몸으로 낙서를 하자. 그런 몸짓들이 바로 사랑이다. 가을에는 뜨거운 사랑을 남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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