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운명적인 사랑>
미국 작가 로버트 제임스 월러(Robert James Waller)가 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에서 순간적으로 일탈한 가정 주부가 그 사랑의 경험과 느낌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다.
미국 시골 농장에서 가족들과 조용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던 어느 중년 여성이 우연히 만난 사진작가와의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4일 동안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평생 그 사랑을 가슴 속에 담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여자 주인공 프란체스카 존슨(Francesca Johnson)은 남편과 아이들이 여행을 떠나고 혼자 집에 남아 있다가 길을 묻는 낯선 남자를 만나게 된다.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Robert Kincaid)는 로즈만과 할리웰 다리의 사진을 찍기 위해 매디슨 카운티에 왔다가 길을 잃고 프란체스카에게 길을 물었다.
프란체스카는 우연히 자신에게 다가 온 매너 좋은 낯선 남자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프란체스카는 일상적인 가정생활에 권태를 느끼면서 새로운 낯선 사랑에 감동하고, 그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 주는 무한한 행복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개인의 사랑 때문에 다른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고, 기존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헤어진다. 프란체스카는 죽을 때까지 킨케이드를 잊지 못하고 사랑한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사람에의 꿈은 있다. 모든 사람이 순수하고 멋있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런 사랑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설사 우연히 나타났다고 해도 현실을 그 사랑을 포기하게끔 강요한다. 많은 사람들이 손에 잡혔던 사랑을 놓고 후회한다.
그러나 그 사랑을 잡았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운명이 뒤바뀐다. 기존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 대신 현실을 붙잡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그 사랑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은 어디까지나 사랑이다. 사랑이 현실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 포기하거나 망각해서도 안 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 사랑은 당장은 달콤한 유혹처럼 다가왔지만, 시간이 가면서 슬픔으로 바뀌고 후회로 변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사랑이다. 그러나 똑 같이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을 무시하고 사랑에만 집착하면 그 사랑은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프란체스카가 보여준 사랑의 미덕은 당장은 슬프지만 그 슬픔을 승화시켜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지금 힘든 사랑을 하고 있는가? 그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라. 그리고 그 의미가 현실을 파괴하지 않도록 유의하라. 매디슨 카운티에서 한 여인이 절제심을 가지고 운명적인 사랑을 승화시킨 스토리가 주는 교훈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고, 결혼해서 남편과 자녀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원천적인 불행의 씨앗이고 비극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을 동시에 추구한다.
결혼은 출발 초기의 상황에서는 두 사람의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충족시켜줄 것 같은 환상을 주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두 사람은 결혼이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만족을 시켜줄 수 있을 뿐 지속적이고 완전한 욕구충족을 시켜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느끼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느껴지는 것은 지독한 권태다.
결혼생활의 권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와 같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과 같다. 헤어나지를 못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결혼생활의 권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보다 많은 시간을 일과 취미생활에 보내고, 돈을 벌거나 출세를 함으로써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 대리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돈을 모으고 명예를 얻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가치를 소홀히 하고, 세속적인 가치에 집착하는 모습은 곧 추함와 게걸스러움, 욕망의 화신처럼 변해간다. 여기에서 자신의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더 늙기 전에 아름다운 사랑을 가슴 속에 남기고 싶은 욕망은 누를 수 없고, 자칫 생활을 파괴할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때 조심해야 한다. 정신적인 가치만으로 살아남는 것도 어차피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양면의 조화를 꾀하지 않으면 인간의 실존은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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