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었던 여자가!!!
철수는 공무원이었다. 어느 날 법원으로부터 소장을 받았다. 미순이 제출한 소장이었다. 소장을 보니 청구취지에 “철수는 미순에게 금 5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쓰여 있었다.
미순은 1년 전에 북한산에 등산가서 우연히 만났던 여자였다. 그 후 몇 달 동안 서로 연애를 하다 헤어졌다. 철수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은 미순으로부터 돈을 빌린 사실이 전혀 없었다. 그 동안 만나면서 밥값이나 여행경비, 모텔비용 등을 모두 자신이 냈지 미순은 일원 한 푼 쓴 적도 없었다.
얼굴이 예뼜고 여자로서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돈을 써가면서 연애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미순 씨가 자꾸 더 돈을 쓰기를 바라고 무리한 요구를 많이 했기 때문에 부담이 되어 서로가 안 만나게 되었다.
소장의 청구원인을 읽어보니 더욱 기가 막혔다. 미순의 주장은, ① 자신은 철수를 북한산에서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되었고 애인관계로 발전되었다. ② 철수는 승진하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③ 자신은 철수에게 돈 5천만 원을 현금으로 빌려주었다. ④ 철수는 자신의 명의로 된 차용증에 무인을 찍어 주었다. ⑤ 자신이 빌려준 돈 5천만 원은 자신의 은행 계좌에서 인출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 보면 간이 작아진다. 작은 일에도 신경을 쓰게 되고, 흙탕물이 튀길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살게 된다. 더군다나 여자문제가 거론되면 신상에도 별로 좋지 않다. 그래서 철수는 혼자서 꿍꿍 앓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를 창피해서 누구하고 상의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부인하고 상의할 문제도 아니었다.
미순은 유명 백화점에서 고급 여성 의류 부띠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철수와 육체관계를 맺고 지내면서 그에 대한 공사간의 모든 생활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남자란 여자와 사귈 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것이 하나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신의 모든 일들을 여과 없이 떠들어대는 것이 많은 남자들의 습성이다. 여자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불리한 말은 잘 하지 않는데 비해 남자들은 여자들을 쉽게 믿어서 그런지 속을 다 털어놓는 버릇이 있다.
철수는 미순에게 직장 내에서 승진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 말을 했다. 승진을 하려면 윗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돈도 든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그녀는 교묘하게 머리를 써서 그럴듯한 상황을 연출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녀는 철수 명의로 차용증을 간단하게 작성했다. 미순 이 직접 백지에 쓴 철수 이름으로 된 5천만 원 짜리 차용증이었다. 철수의 이름 위에 철수의 오른 쪽 엄지 무인을 받아놓았다. 그것은 철수와 잠을 자면서 철수가 술에 취해 녹아 떨어진 상태에서 빨간 인주로 몰래 손도장을 찍어놓았던 것이었다.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서로 몸을 섞고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사는 사이에 육체관계를 하고 피곤한 상태에서 술에 곯아떨어진 남자가 자기 손가락 끝에 살짝 인주를 뭍혀 지장을 찍은 다음 깨끗하게 닦아 놓으면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이나 할 수 있겠는가?
미순은 자신이 고급 의류 가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은행 계좌에 몇 억원이 들어 있어 수시로 현금이 인출되고 있었다. 철수에게 꾸어 주었다는 돈도 차용증 작성 일자에 맞추어 5천만 원이 현금으로 통장에서 인출된 자료를 소장에 첨부해 놓고 있었다.
철수는 소장을 받고 나니 세상이 무서웠다. 변호사를 찾아가서 상의를 하니 실제로 돈을 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차용증과 은행 통장 사본 등이 있으면 그간의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비추어 철수의 주장을 밝히기도 쉽지 않다는 진단이 나왔다. 게다가 막상 재판을 하려고 하니 주위에서 두 사람의 애정관계가 드러날 위험이 있었다. 철수 는 고민에 고민을 계속했다.
철수는 미순에게 연락을 했다. 이미 헤어진 상태에서 연락하기도 우스웠지만 하는 수 없었다. 미순은 당당했다. 꾸어간 돈을 빨리 갚으라는 것이었다. 소장에는 소장 송달 다음 날로부터 지연이자까지 붙도록 되어 있었다.
철수는 땅을 치고 통탄했다. 자신이 사람을 잘 못 보고 정을 주었던 것이. 그리고 미순은 별거하고 있는 남편이 혼인관계등록부에 남아 있다고 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간통죄로 고소 당해 망신까지 당할 처지였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미순에게 사정을 했다. 겨우 천만 원을 깍아 4천 만원을 주었다. 미순은 4천만 원에 대한 영수증을 해 주었다.
이처럼 철수와 같이 차용증의 실제 내용은 채권자인 미순 이 쓰고 채무자인 철수는 단지 그 위에 무인만 찍었을 때 과연 차용증으로서의 효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미순은 아주 신빙성있는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철수와 자신은 연인 사이였다. 그런데 사실은 차용증을 받아 놓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 돈은 완전히 준 것이 아니었고, 일시적으로 무이자로 꾸어 준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혹시나 싶어 차용증을 하나 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철수는 웃으면서 차용증이 뭐 필요하냐? 나를 그렇게 못 믿냐? 내가 공무원인데. 하면서 정 그러면 당신이 차용증을 만들어 오면 도장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모텔에서 백지를 하나 얻어 볼펜으로 차용증을 쓰고 그 위에 철수가 도장을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 미순은 실제로 두 사람이 머물렀던 모텔에서 철수가 잠을 자고 있을 때 종업원에게서 백지 몇 장과 인주를 빌린 사실이 있었다.
이런 모든 사실관계에 비추어 제3자가 누구의 말을 믿겠는가? 이것은 함정이었다. 철수는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