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58)

길자는 지금까지 많은 남자를 만나보았지만, 자신의 마음에 드는 남자는 없었다. 결혼해서 살았던 남편도 남자답지 못해 끝내 이혼했다. 결혼과 무관하게 연애를 했던 남자들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길자는 늘 안타깝게 생각했다.

자신은 왜 남들처럼 남자복이 없는가 하고 억울하게 생각했다. 주변에 보면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여자들이 남자들을 잘 만나 호강을 하고 행복하게 산다.

그런데 그런 여자들에 비하면 길자는 여자로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만나는 남자들마다 한 두 가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대개의 남자들이 소심하고 비겁하고, 야비하고, 째째했다. 그리고 여자를 성적으로만 생각하고 애정도 없었다. 감성이나 낭만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좁쌀만큼도 없었다. 성관계도 남자들이 체력관리를 잘 안해서 그런지 길자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남자를 포기하고 치킨집이나 열심히 하고 등산이나 배드민턴 등 취미생활이나 하고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치킨집에 나타는 헬스클럽 코치의 큐피트 화살에 심장을 맞았다.

그 코치의 화살은 강하고 독했다. 화살촉에 무슨 독을 발랐는지, 길자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코치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진지한 표정, 저음의 음성, 연한 미소, 남자다운 거친 성격이 모두 길자의 가슴에 꽃혔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코치에게 다가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일인지, 늦은 시간에 코치 혼자 치킨집에 왔다. 코치는 아무 말 없이 혼자서 술을 시켰다. 평소 마시던 생맥주 대신 참이슬을 시켰다. 그리고 치킨 한 마리에 소주를 맥주잔에 따라 무려 다섯잔을 마셨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정도 술을 단시간에 마시면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OO 공원’으로 옮겨가서 영원한 휴식을 취할 것이었다. 그런데 코치는 전혀 술에 취한 기색이 없이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내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은 듣지 않고 있었다. 길자는 코치 앞에 앉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무슨 걱정거리가 있으세요?”
“아니예요. 그냥 울적해서 그래요. 걱정 말아요.”
“아니예요. 무슨 큰 고민이 있어 보여요.”

한참 있다가 코치는 말했다. 자신이 근무하는 헬스 주인 여자가 코치에게 관심을 보이다가 코치가 전혀 거들떠보지 않자, 코치를 못살게 굴고 있다. 그 원인을 생각해보니, 코치에게 지도를 받는 어떤 의사 부인에게 친절하게 해준 것을 코치가 그 여자와 사귀는 것으로 오해하고 난리를 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치는 그 헬스장을 그만 둘까 하는데, 몇 년 동안 자리 잡은 곳이고 보수가 괜찮은데, 속도 상하고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의사 부인의 지도를 다른 코치에게 넘겼더니 그 여자는 또 코치에게 그럴 수 있느냐고 난리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길자는 코치가 불쌍했다. 그래서 치킨집 문을 일찍 닫고 코치를 데리고 다른 식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늦게까지 술을 같이 마시다가 코치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자 코치가 혼자 생활하고 있는 원룸까지 주었다.

코치는 원룸에 들어가자 곧 침대에 쓰러져 골아쓰러졌다. 길자는 그 곁에 누웠다. 그렇게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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