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진단하는 법
태양은 삶의 원천이다. 낮을 만들고 모든 생명체로 하여금 성장하게 하고, 빛을 준다. 모든 생물은 태양을 향한다. 그러나 태양에 직접 노출되는 것은 위험하다. 생명이 소멸될 수 있다.
사막 위를 계속 걷고 있으면 그 생명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진다. 여름 한낮에 계속 밖에서 있으면 일사병에 걸린다. 모든 생물은 태양을 원하지만 그 태양을 가릴 수 있는 그늘이 필요하다. 숲이 필요하고 동굴이 있어야 한다.
자연적인 그늘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움막을 만들었다. 그속에 들어가 태양의 직사광선을 피한다. 태양은 현실이고, 사랑은 그늘이다. 강렬한 태양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냉정한 현실을 의미한다.
그늘은 얼어붙은 심장을 부드럽게 녹여주는 뜨거운 사랑을 의미한다. 태양이 차갑고, 사랑이 뜨겁다는 것은 지독한 모순 같지만 분명한 진리다. 세상 환경은 매우 냉정하다. 아주 과학적이고 기계적이다. 철저한 논리 속에서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우주의 구조 자체가 그렇다.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면이 개입되면 우주는 대혼란이 일어난다. 별들이 서로 충돌하게 되고, 지구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냉정한 우주의 구조, 성격은 생명체에 그대로 반영된다.
모든 동물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자기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종족을 보존하는 냉정한 법칙만이 존재할 뿐 동정이나 연민, 필요 이상의 성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포식하면 더 이상 먹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성욕을 충족시키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생명은 유지된다. 그 목적을 다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신비스러운 사랑이 등장한다. 사랑이 중간에 개입하고 있다. 그 사랑은 단순한 존재 그 자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냉정한 현실 속에서 태양을 차단시켜 주는 그늘과 같은 존재다. 그늘 속에서 태양을 바라볼 때 태양은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그늘을 통해 태양의 강렬함을 완화시킬 수 있으며, 그늘 안에서 자신의 삶을 부드럽게 바꿀 수 있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 뜨거운 가슴을 지키며 살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에 집착한다. 뜨거운 사랑을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이 사랑은 삶의 본질과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냉철한 자기진단이 불가능하다. 단지 감각적으로만 느끼고 판단할 뿐이다.
이성적인 사고와 분석이 어렵다. 그냥 감성적으로 육체적으로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사람을 살리는 생명수의 역할도 하기도 하지만, 마약처럼 사람을 중독에 빠뜨리며, 잘못된 사랑은 파멸의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인간을 방황하게 하기도 하고, 악의 늪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삶의 가치를 뒤바꾸어 놓기도 한다. 대단히 막연한 말 같지만, 사랑을 그때그때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날 때 그 사랑이 정당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애당초 잘못된 사랑은 아닌지, 그 사랑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사랑이 깊어지는 길목에서도 잠시 사랑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정말 서로가 사랑하고 있는지, 상대방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운명이라고 믿고 있다. 일단 시작된 사랑은 숙명이므로 그냥 끌려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은 그 자체가 운명이 아니고, 그런 사고와 믿음이 운명일 것이다. 맹목적으로 끌려가던 많은 사람들이 어느 날 그 운명에서 순식간에 뛰쳐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걸 보면 운명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것이 사랑이 아닌가 싶다.
사랑에 대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대상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무조건 믿고 방치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살아가면서 가끔 분석하고 반성하고 자기진단을 하는 것은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받지 않고, 사랑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자칫 순수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계산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으나, 그런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순수하게 하되, 사랑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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