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내가 나무로 서 있을 때
그대는 꽃잎으로 날아왔어요
화사한 봄날
작은 고개를 넘어
내게 다가왔어요
진한 향기를 부으며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요
한 여름 짙은 녹음 속에서
그대는 빗물이었어요
살과 살이 맞닿는 짜릿함을 남기고
나무의 껍질을 벗긴 채
사랑의 의미를 새겼어요
낙엽이 떨어지던 날
그대는 바람으로 떠나갔어요
빈 가지로 잡으려 했지만
색 바랜 잎으로 막으려 했지만
무정하게 떠나갔지요
내가 눈에 덮여 서있을 때
그대는 눈물을 닦아주었어요
사랑을 잃은 상처 때문에
눈물이 강을 이루어
가슴 속을 파고 드네요
한 겨울에
우리 사랑은
순결이라는 묘비명을 남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