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인 사랑의 의미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매우 어렵다. 사랑은 단순히 육체적인 작용이 아니다. 오히려 정신적인 작용이 더 중요하다. 사랑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경험에 의해 진리가 된다. 반복되는 사랑의 경험은 사랑의 진실이 무엇인지 가르켜준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사랑의 진실은 ‘정신적인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육체적인 접촉으로 인한 일시적인 쾌락은 사랑의 당사자를 절대로 결합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분리시킬 뿐이다.
쾌락이 반복되면 두 사람은 사랑의 고리에서 이탈하고, 멀어진다. 시간이 갈수록 성적 쾌락은 정신적 결합체를 분리시킨다. 진실한 사랑은 초기의 연속적인 성관계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교감의 기반이 구축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결혼한 남녀가 지나치게 잦은 성관계를 하다가 임신과 출산을 계기로 상당한 기간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정신적 사랑이 자리를 잡고 더욱 성숙한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알래 바디우의 표현을 빌리면,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 쾌락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위한 나르시스적인 것이다. 성적인 쾌락을 경험하면 할수록 두 사람은 분리되며 멀어지게 된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삭막한 현실은 인간으로 하여금 질식하게 만든다. 그런 환경에서 사랑 역시 제도의 틀 안에 들어가면 종래와 같은 사랑의 기능과 역할을 못한다.
그래서 결혼을 해도 사랑의 부재라는 공간에서 개인은 의지할 곳 없이 방황하며 고독하고, 지속적인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빈 공간을 채워주는 것이 ‘사랑의 일탈’이다. 산소가 부족한 공기를 다른 새로운 효소로 실존을 쓰러지지 않게 부축여주는 것이 ‘불륜’이다. 그래서 불륜은 기존의 사랑이 실종된 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사랑이 된다.
하지만 그것 역시 ‘불안한 사랑’이며, ‘언젠가 소멸할 운명의 사랑’에 불과하다. 결혼에 의한 사랑과 불륜에 의한 사랑 모두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변화와 변질을 겪게 된다.
현대인들은 사랑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는다. 실존이 기대했던 사랑이 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랑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보충하기 위한 낯선 사랑 역시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사랑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실존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사랑 이외의 가치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에 맹목적으로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을 하되, 그 사랑이 어떤 것을 주는 것인지 알고, 사랑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일체감, 충만감, 행복감’에 대한 기대를 지나치게 높여서는 안 된다. 사랑은 절대 필요한 것이지만, 그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생각은 어리석다.
서로에게 똑 같은 의미를 갖는 사랑을 위해 서로 노력하되, 그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두 사람의 삶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극복시켜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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