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1)

유부남과 유부녀가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무방비상태다. 자신의 배우자들이 무엇을 의심하고, 은밀한 관계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아니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주의를 하지 않고 있다.

만약 들켰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당장 자신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사랑의 감정을 나누고, 육체적인 쾌락과 순간적인 쾌감을 느낄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방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쓰나미가 들이닥쳤다. 화산이 폭발하고 성난 이리떼가 달려들어 물어뜯고 있는 것이다. 그게 법과 현실의 괴리다. 윤리규범과 상식적인 법감정의 차이다.

어찌 되었든, 경희는 나름대로 많은 것을 갖춘 젊은 여자다. 교양도 있고, 센스도 있고, 성관계에 있어서도 영식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런 여자를 남자라면 당연히 보호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위해로부터 막아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갑자기 닥친 상황에서 남자는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식은 이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남편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경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경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게 사람의 이중성격이다.

일이 잘못되면 두 가지 측면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취한다. 감사와 원망, 이 두 가지는 항상 따라다닌다. 두 가지 감정 중 어느 하나가 우세하면 다른 한 쪽은 묻혀 버린다. 그냥 사라져 버린다.

남편이 그렇게 의심하고 뒤를 쫓는다는 것을 예상했으면 당연히 자신에게 이야기해 주고, 만나지 말든가 더 조심했지 않았겠느냐는 식으로 영식은 경희를 탓했다. 물론 속으로만 탓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영식은 경희로부터 그녀의 남편이 경희를 의심하고 뒤를 쫒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물론 경희 자신도 남편이 자신을 의심하고 사람을 시켜서 현장까지 잡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식에게 일체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던 것이다.

영식은 유부남이었지만 경희를 만날 때 자신의 부인이 경희 남편처럼 크게 문제 삼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식은 경희의 경우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경희 남편의 성격이나 예상되는 행동은 오직 경희만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희로서는 영식을 만날 때, 적어도 경희 남편이 경희가 바람을 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했어야 하고, 그래서 더욱 조심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영식은 이런 상황에서 경희를 탓하는 것은 결코 인간적인 사고나 행동은 아닐 것이다. 태초부터 사람들은 남의 탓을 하기 시작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의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게 되자 아담과 이브는 뱀의 탓과 먹으라고 권한 이브의 탓을 했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가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변명했다. 이브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뱀의 탓으로 돌렸다(창세기 3장 12절-13절).

그러나 아담과 이브는 그와 같은 변명과 남의 탓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그 이후에도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면 끊임없이 남의 탓을 한다.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네 탓이다.

사람은 어떠한 경우이든 남의 탓을 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이 먹어 벌거벗은 몸으로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이불을 들추고 사진을 찍고, 때리고 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을 떠나서 얼마나 수치스럽고 혼란스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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