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9)
은영이 일일주식회사에 들어온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림은 중학교 때부터 남다른 소질을 보여 열심히 했고, 그래서 전공으로 삼았으나, 막상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전공을 살려 취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어떻게 일일주식회사에 사원으로 들어왔는데, 입사한 지 얼마 있지 않아 사장 눈에 띄어 비서로 발탁되었다. 사장은 은영을 보고, 자신의 취향에 딱맞는 얼굴과 몸매,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회사 다른 임원들이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비서실에서 근무하도록 지시했다.
은영은 비서로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었다. 그냥 사장 비서로서 차심부름이나 하고, 개인적인 심부름만 하는 정도였다. 그 이상으로는 은영의 입장에서 회사 업무를 처리할 능력도 없었다.
회사에서 사장 비서는 상당한 힘을 가진다. 임직원들이 비서에게 잘 보여야 편하기 때문에, 비서는 사장 이외의 사람들에게 굽실거릴 이유가 없다. 만일 회사 임직원들이 비서에게 잘못 보이면, 비서는 사장에게 그들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고, 모함을 한다. 그러면 사장은 비서의 말만 듣고 임직원을 해고하기도 한다. 아니면 한직으로 내쫓아버린다.
지금까지 대기업의 비서로 들어가 출세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특히 여자로서 그룹의 회장에 잘 보이면, 해외여행을 수행하고 다니다가 정을 통하고 아예 애인으로 신분상승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이라도 하나 낳으면 완전히 팔자를 고친다.
은영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났다. 그리고 그 여파로 아버지는 감방까지 갔다왔다. 징역을 1년 살고 나왔다. 은영은 동생 2명과 병든 어머니를 부양해야 할 입장이 되었다. 아버지 옥바라지도 모두 은영의 몫이었다.
이때 만난 사람은 유부남이었다. 은영에게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은영은 자연스럽게 그 유부남의 애인이 되었다. 은영은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 사람과 연애를 했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처음 어느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을 때에도 그 남자는 은영에게 명품 가방이나 옷을 사주고, 돈을 넉넉하게 주어서 회사에서는 은영이 부잣잡 딸이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은영이 예뻐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상하게 처음 취업했던 회사에서도 남자 상무가 치근덕거렸다. 회식 자리에서도 그 상무는 은영을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노래방에도 데리고 가고, 꼭 은영을 택시에 태워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은영은 그런 것이 느끼하고 싫었다. 나이 든 상사가 자신에게 성희롱을 하는 것같고, 여자로서 생각하고 꼬셔서 성관계를 하려는 의도를 간파하고는 정말 싫었다. 그래서 그 회사에서도 몇 달만에 그만두었다.
다만, 직장이 아닌 밖에서 만난 유부남인 애인과 연애를 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 유부남의 와이프에게 미안한 마음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유부남과 결혼한다는 생각도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답답한 현실에서 남자 친구 정도로 생각하고 나중에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헤어질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은영은 대학교 1학년 때 정말 좋아했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1년 만에 은영의 가까운 여자 친구와 애인이 되면서 은영을 멀리했다. 그때 은영이 받은 충격은 정말 대단했다. 정말 자신이 좋아했고, 순수한 첫사랑이었고, 첫경험이었다.
물론 그 남자친구와 은영의 여자 친구는 그 후 헤어졌지만, 은영은 이 일로 인해서 남자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남자로부터 받은 트라우마가 무의식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를 별로 믿지 않게 되었고, 섹스에 대한 관념도 무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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