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3)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텔방은 평온했다. 영식과 경희 두 사람만의 공간이었다. 알몸으로 사랑을 나누고, 서로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속정도 들었고, 서로에게서 따뜻한 배려도 받았고, 마음의 위안도 받았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 이상하다. 혼자 있으면, 몸과 마음은 고독을 느끼고 깊은 심연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한다. 자신과 다른 또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한다.

상대를 통해 자신을 투영시키고, 몸과 몸을 마찰시킴으로써 체온을 유지하고,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마치 발전기가 양과 음의 극을 연결시켜 에너지를 창출하듯이, 인간도 똑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몸뿐 아니라, 마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마음은 죽음을 향한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마음과 연결되면 삶을 향한다. 그래서 죽음을 망각한다.

영식과 경희는 비롯 허용되지 못한 사랑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사랑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생활과도 연결되어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가끔 만나 섹스를 하면서, 살아가면서 받는 많은 스트레스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성적 결합을 통해 서로가 상대를 자신의 것이라고 의식적으로 확인하려고 했다. 완전한 소유는 아니어도, 관계한다는 것은 그 순간 일시적인 소유라고 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었다. 보이지 않는 정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작용을 한다. 영식과 경희는 아직 젊은 나이였기 에 섹스에 대한 욕구도 해소해야 했다.

육체적인 쾌락도 매우 중요한 삶의 요소이며, 원동력이라고 믿고 있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집에서는 배우자와는 거의 관계를 하지 않고 지내는 생활인이었다. 그래서 더욱 두 사람 사이에서는 이런 섹스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호르몬 분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두 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은 늘 하던 대로 섹스로 몸을 풀고 개운한 기분으로 밖으로 나가 커피를 마실 생각이었다.

커피는 인류가 개발해 낸 기호식품 중에서 아마 지금까지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남자와 여자가 뜨거운 사랑을 한 다음, 겨울의 쌀쌀한 날씨에 눈이 덮힌 창밖을 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아주 작은 인생의 행복이 아닐까?

하지만 사람의 일은 늘 뜻한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게 경험에서 얻게 되는 인생의 진리다. 삶의 모순이다. 모텔방문이 열리고, 커튼이 올려진 상태에서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 점령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 평온했던 공간은 그야말로 악의 소굴로 변했다. 그곳은 악마와 비악마가 서로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무서운 전장터가 된 것이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다음, 영식과 경희는 옷을 챙겨 입고 경희 남편 일행과 함께 모텔 밖으로 나가 부근에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 인생의 아이러니다. 어차피 가려고 했던 커피숍인데, 둘만이 아니라, 다른 두 사람이 더 같이 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미움을 나누기 위해서 가는 것이 되었다. 그때의 커피 맛은 커피가 아니라, 지옥의 문 앞에서 피우는 향의 냄새가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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