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2)
정 사장은 와인을 마시면서 은영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정 사장은 술에 취하자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정 사장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같은 학교 캠퍼스였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걸어가는데 그녀가 내 눈에 띄었어. 순간 나는 어떻게 저런 여자가 있을 수 있을까하고 내 눈을 의심했어. 너무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었던 거야. 몇 년 동안 꿈에 그리던 스타일이었던 거지. 그래서 나는 무작정 그녀를 따라갔어. 그녀가 어떤 강의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어.”
은영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를 이 늙은 영감에게서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약간 짜증이 났다. 그래서 와인을 더 마셨다. 일본 와인은 약간 달콤했다. 드라이한 맛은 적었다. 하지만 지금 은영에게는 그런 와인이 더 좋았다. 머릿속에서는 순현에 대한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내가 일본에 출장 와있는 동안 분명 이 인간은 다른 여자와 놀고 있을 거야. 여자 없으면 못하니까. 이런 남자와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내게 도움이 되는 것도 없을 거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답답하다.’
정 사장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젊었을 때의 청춘이 어떻게 마음에 드는 여자를 꼬셨는지, 정복했는지 무용담에 혼자 심취해 있었다.
“그녀가 강의실에서 나오자 나는 또 그녀를 몰래 뒤따라 갔어. 기술적으로 미행한 거지. 그래서 그녀가 생활하는 원룸까지 알아냈어. 그리고 한 달 정도 그녀를 스토킹한 거지.”
“그래서요?”
“마침내 어느 날 그녀에게 말을 걸어 둘이서 커피를 마실 기회를 가졌어. 그리고 나는 그녀를 꼬시기 위해 많은 거짓말을 했어. 내가 대구에서 올라왔는데, 아버지가 대구에서 아주 돈이 많은 재력가라고 했어. 그리고 내가 외동아들이라 아버지 회사를 이어받아야 하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프랑스로 유학을 가야 할 처지라고 했어. 다만, 아버지가 나를 강하게 키우느라고 돈을 쓰지 못하게 훈련시키고 있어서 답답하다고 했어.”
“그래서 그 아가씨가 넘어갔어요?”
“당장은 아니었지만, 내 거짓말이 효과가 있어서 그런지 그 후 가끔 만나서 같이 식사를 했어. 그래서 식사할 때는 내가 어려운 형편에 큰 출혈을 해서 고급 레스토랑으로 갔지. 그러다가 어느 날 같이 술을 마시고 그녀와 같이 야외 공원으로 가서 벤치에 앉아 있다가 숲 속으로 끌고가서 강간을 했어. 그녀는 강하게 저항했지만, 내가 워낙 세게 나오니까 더 이상 반항을 하지 않고 있었어.”
“그럼 사장님은 고소를 당했어요?”
“그러고 나서 나는 무릎을 꿇고 빌었어.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 알아서 하라고 했어. 그러면서 눈물을 흘렸어.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했어.”
“그랬더니 그 아가씨가 용서를 해준 거예요?”
“그녀는 나에게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했어. 그러면서 혼자 생각을 정리한 다음 일주일 후에 만나서 결론을 내주겠다고 했어. 그래서 일주일 후에 우리는 만났어. 그랬더니 그녀는 내가 사람도 아니라면서 더 이상 자기 눈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어. 그러면서 만일 한 번 더 눈에 띄면 경찰서에 고소한다고 했어.”
“그래서 그 후 어떻게 되었어요? 그걸로 끝이예요?”
처음에는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 사장의 이야기는 매우 색달랐다. 그래서 은영도 솔깃했다.
“아니지. 물론 처음에는 나도 순간적으로 큰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해서 겁을 많이 먹었어. 그래서 그녀를 다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매일 술에 취해 잠이 들곤했어. 하지만 그녀는 내게 첫사랑이었고, 내 동정을 준 여자였어. 그리고 처음부터 그녀는 내 마음에 꼭 드는 여자였어. 그래서 나는 젊은 나이에 다시 용기를 냈어. 그녀를 찾아가 편지를 건네주었어. 내 편지에는 그녀 없으면 나는 못산다고 하면서, 고소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어. 내 인생은 끝이라고 썼어.”
“그래서요? 그녀가 받아준 거예요?”
“그녀는 나를 데리고 술집으로 갔어. 그러면서 술을 마시고 울면서 이야기했어. 내가 싫지는 않지만, 강간한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했어. 그리고 자신은 당시 처녀성을 상실했다고 하는 거야. 자기 아버지가 어머니가 시집올 때 처녀 아닌 것 때문에 평생 사이가 좋지 않게 지냈고. 그걸 핑계로 아버지는 평생 바람을 피면서 자신을 정당화했다고 하면서, 그녀가 처녀를 상실했다고 하면 어머니가 실망해서 견디지 못할 거라고 했어.”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정 사장은 갑자기 술에 취해 졸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아마 못 이룬 옛사랑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혼자 자기도취에 빠져 술이 급하게 올라온 모양이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96) (0) | 2021.01.02 |
---|---|
작은 운명 (95) (0) | 2021.01.01 |
작은 운명 (11) (0) | 2021.01.01 |
작은 운명 (43) (0) | 2021.01.01 |
110. 냄새 난다는 이유로 젊은 애인으로부터 버림을 받다 (0) | 2020.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