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0)

현재의 상황에서 경희는 바람 피다가 모텔에서 남편에게 들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정에 알릴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알린다고 한들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리고 만일 이런 상황을 친정에 알리면, 아마 부모님들은 기절해서 쓰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아이까지 있는 유부녀가 무엇 때문에 다른 남자, 그것도 가정이 있는 유부남을 만나서 연애를 하고, 대낮에 모텔에 가서 그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나이 든 부모로서는 도저히 경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리 딸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공부시켜서 시집을 보냈으면, 그만이지 평생 부모가 딸을 책임져야 하느냐고 반문할 것이리라. 그것도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닌 데, 무엇 때문에 버젓이 가정 있는 여자가 외간 남자와 모텔을 다니느냐고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리라.

경희는 가까운 친구들이 여러 명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 경우 누구에게 연락을 할까? 하지만 친구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가깝게 지내는 친구라 해도, 경희의 입장에서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친구의 불행을 겉으로는 안됐다고 걱정해 주면서도 속으로는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남이 잘 되면 공연히 기분이 좋지 않다. 친구가 남편이 돈을 잘 벌고 가정에 충실하고, 자식들이 공부를 잘 한다고 자랑하면 속으로는 은근히 기분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인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사업도 잘 안 되고, 자녀들도 공부도 안 하고, 못된 짓이나 하고 다닌다고 하면 속으로는 고소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런 말을 하는 친구를 속으로 무시하고 우습게 본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많다. 하지만 누가 그런지 알 수 없으니 함부로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경희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친구들 세계에서는 집안도 괜찮고, 미모도 갖추었고, 남편도 의사를 만나 아이 낳고 아무 걱정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돈도 쓸만큼 쓰고 골프도 치러 다녔으니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경희가 갑자기 불륜으로 남편에게 적발되고 앞으로 이혼을 당할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면 속으로는 ‘그렇게 잘난 체 하더니 잘 됐다’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사회 전반이 극도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물질만능주의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물질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겉으로 보이는 피상적인 것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대접하거나 무시한다. 또한 남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세태다. 그래서 잘 살던 사람이 망하고, 공무원이 감방에 가고, 남들이 병에 걸려 죽어도 자기 일이 아니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난 척 하던 사람이 패가망신하면 신바람이 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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