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파탄은 눈물의 씨앗인가?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운명의 여신을 거역하지 못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거센 파도에 떠밀려 갈뿐이다. 그들이 하늘을 향해 던지는 원망과 탄식의 소리는 풍랑소리에 묻혀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않는다. 오직 비정한 운명의 여신만 듣고 그냥 지나칠 뿐이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되 지금까지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이상한 일이다. 나는 지금도 그 세 사람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5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오후 그들은 상담을 하기 위해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젊은 여인은 눈에 확 띄는 미모를 갖추고 있었다. 30대 초반의 나이였다.
옆에는 60대 초반의 어머니가 있었고, 갓 돌이 지난 여자 아이가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줄 우유병을 들고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젊은 여인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러나 아이의 얼굴은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근심 걱정이 보이지 않았고, 그냥 단순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태어날 때 누구나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다. 세월이 가면서 세파에 시달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겨지면서 사람들은 천사의 모습을 상실하게 된다.
천사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 곁을 떠나가는 것이다. 천사의 본성을 상실한 인간은 자주 하늘을 쳐다보지 못한다. 죄의 무게에 눌려 자꾸 땅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의 사연인즉 이랬다. 결혼한 지 5년이 되었다. 남편은 정말 부인을 사랑해서 결혼했다. 결혼 전 부인은 사회적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밝은 성격, 아름다운 미모까지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은 목숨을 걸고 애정을 얻으려고 노력했고 최선을 다해 결국 사랑에 이르렀다. 그래서 결혼까지 했다.
여기까지는 너무 행복했다. 자상한 성격의 남편을 만난 여자는 모든 세상적인 가치와 기준을 남편에 맞추려고 애썼다.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려고 마음 먹었고, 세상은 그렇게 전개될 것으로 보였다. 장미빛 인생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마음껏 누릴 의욕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의 상태가 된 부인에게 남편은 웬지 모르게 애정이 식어갔고, 다른 여자를 만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부인은 남편의 부정행위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나 뚜렷한 물증을 찾지는 못했지만 여자로서의 직감 때문에 확실한 심증은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형사소송법상의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남편)의 이익으로’라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남편)의 불이익으로, 피해자(부인)의 이익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애정절차법에서의 원칙이다. 범죄의 입증을 국가기관인 검사가 해야 하는 것과는 다르다.
애정관계에 있어서는 애정의 전제인 신뢰를 깨뜨린 쪽에서 정상적인 신뢰관계를 입증해야 할 기본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남편의 부정행위에 대한 심증을 갖게 된 부인은 시간이 가면서 노이로제에 걸리게 되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자존심과 자아의식은 남편의 애정일탈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땅에 떨어지고 부수어진다.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게끔 게센 파도에 표류하게 되고, 방황하게 된다. 두 사람은 그래서 진지하게 자신들의 거취에 관해 논의하게 되었다. 남편은 이렇게 안 맞아서 서로 계속 살 수는 없지 않느냐? 이혼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무런 이유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냥 싫어졌다는 것이었고, 서로의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결국 여자도 이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싫다는데 무슨 방법이 있을까? 서로의 앞길이 창창한 나이인데, 그냥 살자고 우겨서 어떤 실익이 있을까에 대해 진한 회의가 느껴졌다.
그래서 이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혼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남편 앞으로는 아무런 재산도 없었다. 헤어지면 어린 딸을 데리고 고생을 해야 할 일만 남았다. 위자료도 받을 방법이 없고, 분할할 재산도 없었다. 양육비도 받아낼 형편이 못되었다. 남편은 그냥 혼자 벌어 혼자 먹고 살 상황이었다.
그런 남편에게 달라붙어 좋아하는 여자의 심리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랑이 꼭 돈 때문인 것이 아니라는 건 어렴풋이 알지만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지 않은가? 부인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어 친정어머니에게 많은 시간 맡겨놓고 있었다.
그런데 친정어머니 역시 아이 키우는 일이 무척 고달프게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사위가 미워졌고, 경제적인 문제도 어려워지자 아이를 돌볼 마음도 점차 식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남편에게 넘기는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이를 맡을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돼죠?” 부인은 눈물을 글썽였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고아원으로 보내게 되지 않을까요?” 친정어머니는 불행을 예감하는 듯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아이를 기르지 않겠다고 하면 법은 이를 강제할 수 없다.
그래서 고아원으로 보내지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실제는 고아가 아닌데 고아로서 생활해야 하는 현실이. 부인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옆에서 친정어머니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는 방긋 방긋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마음도 천길 낭떠리지로 내려가고 있었다. 삼대에 걸친 세 사람의 안타까운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64) (0) | 2021.01.23 |
---|---|
작은 운명 (63) (0) | 2021.01.23 |
다른 사람의 가벼운 칭찬에 들뜨지마라 (0) | 2021.01.23 |
자신의 행복수치를 너무 높게 잡지 마라 (0) | 2021.01.23 |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없다 (0) | 2021.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