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64)

아무튼 자리가 사람을 빛나게 한다고 지금의 정숙은 왕년에 놀던 정숙이 아니었다. 180도 달라졌다. 엉망으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나타나면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똑 같았다.

지현은 이번에 명훈 엄마를 만나러 갈 때에는 혼자 가지 않고, 친구 명자를 데리고 갔다. 약속 장소는 강남에서 돈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고급 일식당이었다.

“찾느라고 고생하지 않았어요?”
“예. 괜찮았어요.”
“이 친구는 제가 데리고 왔어요. 제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하요. 같이 이야기하면 돼요.”

명훈 엄마는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며,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가정이 얼마나 모범적인지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일본 정종, 사케를 시켜 같이 마시자고 했다. 지현은 아이 때문에 못마신다고 했다. 명자는 평소 술을 좋아하니까 명훈 엄마와 대작을 해주려고 같이 많이 마셨다.

명훈 엄마도 술을 많이 마셨다. 지현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술을 저렇게 마실까? 아마 맨 정신으로는 하기 곤란하니까 술의 힘을 빌어서 말을 하려는 것이겠지.’

“아가씨. 내가 알아봤더니 전에 다른 남자와 동거생활을 했고, 낙태수술도 한 적이 있다면서요?”
“아니예요. 그런 적 없어요. 잘못 아신 거예요. 예전에 남자 친구가 있었지만, 육체관계는 전혀 없었어요. 저는 명훈씨가 처음이었어요.”

“아니 내가 다 알아봤고, 증거도 가지고 있는데 왜 아니라고 해요?”
“무슨 증거가 있는지 보여주실래요? 제 친구는 그런 아이가 아니예요. 지금까지 일만 열심히 하고 남자는 전혀 모르고 살았어요. 제가 잘 알아요. 다른 여자 애들하고 달라요. 믿어주세요.”

“그렇게 잡아떼봤자 소용 없어요. 내가 다 알아봤으니까. 어쨌든 우리 명훈이와는 어울리지 않고, 결혼은 절대 못하는데 아이는 빨리 떼야지, 어떻게 하려고 해요? 도대체 원하는 게 뭔지 말해봐요.”

“어머님. 저는 지금 명훈씨 아이를 가진 상태이고, 오직 명훈씨만 생각하면서 살고 있어요. 지난 과거는 잘못한 것도 없지만, 과거는 따져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아이를 낳고, 명훈씨는 대학 마치고 자리 잡으면 결혼하게 해주세요. 제가 열심히 할 게요. 어머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거예요.”

“글세. 우리 집에서는 이미 결론이 났어요. 명훈이가 한때 어린 나이에 실수한 거고. 아가씨는 나이 먹고, 그동안 이 남자 저 남자와 마음대로 연애하고 지내다가 순진하고 세상 전혀 모르는 명훈을 붙잡고 늘어지려는 거, 절대 용납 못해요. 다만, 우리 명훈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돈으로 보상할 게요. 천만 원을 줄테니 빨리 수술하도록 해요. 그리고 서로 맞는 좋은 남자 새로 만나도록 해요. 자꾸 말도 되지 않는 상황 만들어놓고 공갈치고, 명훈이를 괴롭히면 우리도 하는 수 없이 법으로 할 거예요.”

옆에서 술만 마시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던 명자가 끼어들었다.
“아니 아주머니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무슨 증거가 있다고 그래요? 증거를 대세요. 흥신소를 시켜서 뒷조사를 한 거면 내가 고발할 거니까. 왜 없는 일을 만들어 가지고 생사람을 잡아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인가요? 명훈이가 뭘 어려요? 지금 6개월짼데 어떻게 수술을 해요? 그리고 왜 과거 얘기를 해요. 요새 처녀로 시집 가는 여자 있는 거 봤어요? 명훈씨는 총각으로 지현이 만난 건가요? 돈이 그렇게 많으면 100억 원을 주세요.”

명훈 엄마는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돈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고, 은영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보통 문제가 이닌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른 방법을 써야겠다.’
“알았어요. 내가 명훈이와 상의해서 알려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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