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나그네
낯선 길을 가는 사람을 나그네라고 부른다. 나그네는 그 사람의 고유한 이름이 아니다. 길 때문에 잠시 붙여지는 이름일 뿐이다. 나그네는 주인 또는 토착민, 정착인에 대비되는 명칭이다.
우리는 살면서 그때 그때 나그네가 된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곳을 여행하게 되면 그 시간 우리는 나그네의 신분을 갖는다. 나그네 신분으로 있는 동안, 우리는 몇 가지 다른 특징을 갖는다.
첫째, 나그네는 많은 것을 새롭게 알아야 한다. 처음 가는 길이므로, 그 지역을 잘 모르기 때문에 지역민에게 이것 저것을 묻게 된다. 묻는 내용은 대개 가벼운 사항들이다. 찾고자 하는 목표물의 방향과 위치, 그 지역의 특성, 필요한 물건을 얻을 수 있는 방법 등이다. 나그네는 그 이상을 물을 수도 없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더 물어봤자, 더 요구해봤자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둘째, 나그네는 그곳에 적응해야 한다. 모든 것을 그 지역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지역의 환경, 특성, 분위기와 사고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 남는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나그네는 몸을 낮추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경계심과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곳에서 추방되거나 왕따를 당하게 된다.
셋째, 나그네는 사랑을 찾기가 어렵다. 자신이 유래한 곳에 대한 뿌리깊은 애정이 남아있는 한, 그는 다시 똑 같은 애정을 줄 대상을 찾기가 어렵다. 특히 색다르고 낯선 곳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정을 주고,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을 그곳에 싹트게 하는 건, 황무지에서 장미꽃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넷째, 나그네는 언젠가 떠나야 한다. 자신이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회귀성을 갖는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점에서, 그는 돌아갈 곳이 없고, 떠나야 할 곳이 있는 토착민과 다르다. 그래서 나그네는 항상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그래서 순간과 영원을 구별하면서 산다.
우리 모두 영원히 이 땅에서 살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현재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먼저 왔다가 먼저 갔던 많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삶의 나그네로서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그네처럼 살았던 사람들, 절대로 나그네가 될 수 없다면서 영원을 고집하다가 끝내 똑 같은 운명이 되었던 사람들, 나그네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었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나그네로 끝나고 말았다.
사랑에 관해서 우리는 더 심한 나그네다. 제대로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 아직 밟아보지 못했던 사랑의 길을 가는 나그네는, 그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많은 것을 묻게 된다.
그러나 누구에게 사랑의 길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사랑의 영역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던 진정한 토착민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의 영토에 들어가서 그곳에 적응을 해야 하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사랑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태아로서 10개월 동안 유아독존으로 혼자만의 세상을 살았던 인간은, 가장 고독한 존재로서 자신만을 가장 사랑하게끔 태생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자신을 가장 철저하게 사랑함으로써 몹시 이기적인 상태가 된 인간이 다른 인간을 과연 얼마나 진정으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남녀간에 시작된 사랑이 그 고유한 이기심 때문에 파경에 이르게 되고, 많은 사랑이 위선과 독선으로 분식되어 왔다.
사랑에 대해서도 나그네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떠나갈지 모른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의 역사에는 수많은 이별과 고통이 고유한 속성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겨울인데도 봄날 같다. 햇살은 환하고, 따뜻하다. 바깥 공기가 창가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밖을 보라고 손짓한다. 사랑의 길을 묻는 나그네는 문득 겨울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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