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0)

강 교수가 첫 번째로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달라붙는 여자 성경아(28세, 가명)를 성공적으로 떼어낸 과정은 이랬다. 당시 강 교수는 35살이었다. 강 교수는 아직 조교수 신분이었다. 그리고 한참 열심히 교수 일을 하고 있었다.

경아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술학원에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경아의 꿈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서 화가로서 성공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려 주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오직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다.

다른 것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경아는 그림 그리는 것과 자신의 몸매를 가꾸는 것에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틈틈이 프랑스어 공부를 했다. 파리에 가서 생활하기 위해서였다.

경아는 대학원에 등록을 하고 학교에 다니다가 우연한 기회에 강 교수를 만났다. 너무 매력적인 여성이 학교 앞 커피숍에서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강 교수가 먼저 말을 걸어 만남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강 교수가 매우 적극적으로 경아에게 접근을 해서 자주 만나 식사도 하고 영화도 관람했다. 두 사람은 같이 미술전시회를 다니면서 서로 미술에 대한 의견 교환을 나누었다.

그 때문에 강 교수도 현대 미술에 관한 공부를 많이 했다. 열심히 미술 공부를 하다 보니 강 교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보람 있는 일,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 교수가 그동안 해왔던 경영학 공부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공부이고 연구였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열심히 노력만 하면 되는 학문이고, 테크닉이었다. 하지만 미술을 달랐다.

그것은 원초적으로 미적 감각이 있어야 하고, 특별한 달란트가 필요했다. 창의성과 예술성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다른 사람의 그림을 베끼는 작업은 열심히 노력하면 똑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추상화나 디자인은 달랐다.

강 교수는 경아의 재능과 열정을 인정하면서 더욱 그녀의 매력에 빨려들어갔다. 처음으로 여성의 정신만을 사랑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한편 경아는 그 동안 몇 사람과 연애를 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곧 바로 소개팅으로 만난 대학 4학년 미대생이었다. 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기본적으로 삶에 있어서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었고, 모든 말과 행동이 너무 천박했다.

그렇다고 남자다움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릿속은 텅 비어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 이외에는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은 것같았다. 인터넷으로 게임이나 하고, SNS를 통해 채팅이나 하는 것이 문자나 글을 대하는 유일한 시간 같았다.

반면에 세상일에는 도통해있었고, 정치적인 신념이나 이념에 대해서도 어느 한 쪽에 서서 맹목적인 신앙심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관계를 무리하게 감행하려고 했다.

경아를 만나는 목적이 오로지 성욕을 충족시키려는 발정기의 숫컷 같았다. 동물은 오직 생식의 목적으로만 성교를 한다. 성교라기 보다는 교미다.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교미를 하는 동물은 아직 없다. 경아의 지식이다.

그런데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경아는 그런 남자 친구의 태도가 아주 징그러워보였다. 때로 동물처럼 보였다. 동물과는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경아의 인식이었다. 어느 날 남자 친구는 경아를 태우고 야외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강변에 차를 세워놓고, 처음에는 무드 있는 음악을 틀어놓고 같이 경치를 구경하면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한 30분쯤 지난 다음 남자는 차안에 보관해놓은 양주를 꺼내 안주도 없이 혼자 들이켰다.

그리고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조수석에 앉아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는 경아를 껴안았다. 그리고 키스를 하려고 했다. 경아는 놀랐다. 죽을 힘을 다해 뿌리쳤다. 그리고 침을 뱉었다. 차에서 내려 뛰어 도망쳤다. 그 남자는 그냥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남자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나중에 소문을 들으니 그 남자는 그 날 술을 마시고 차를 운전하고 돌아오다가 사고를 내고 형사처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경아는 그 후 다른 남자를 만날 때, 첫 번째 경험이 트라우마로 작용했다.

그래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가급적 거리를 두고 만나면서 그 사람의 외모나 말, 행동 보다 내면의 수준을 먼저 생각했다. 깊이 있는 남자인가, 생각이 있는 남자인가, 머릿속에 무언가 들어있는가를 따졌다.

단지 운동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면서 성욕이나 채우려는 동물인지 구분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개의 남자들이 그런 부류였다. 그래서 경아는 계속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 걷고 있었다  (0) 2021.02.11
생의 한가운데 줄거리  (0) 2021.02.11
정말 살기 어려운 세상  (0) 2021.02.11
유부녀가 애인과 헤어질 때  (0) 2021.02.11
<음악에 취해>  (0) 2021.02.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