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1)

그러다보니 경아는 남자 친구들과 한 번도 육체관계를 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에게 딱 맞는 남자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강 교수는 영특하게도 이러한 경아의 생각과 의식을 알아채고 경아를 만나면서 그녀에게 맞게 말하고 행동했다.

강 교수는 남녀의 육체관계에 관한 자신의 소견도 발표했다.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정신적인 것이어야 해요. 육체는 정신에 따라 가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생식의 본능의 범위에서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 섹스가 우선하거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 정신적 사랑이 퇴색하고 소멸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렇게 행동했다. 경아는 이런 강 교수의 사랑과 섹스에 관한 소신과 철학에 감동했다. ‘역시 교수님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구나. 사랑의 본질에 대해 아주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구나!’

강 교수는 더 나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본질적으로 남녀의 섹스는 육체적으로 더러운 것이예요. 성기가 신체에서 배설기관과 같이 기능을 하는 것만 봐도 그런 거예요. 나체 사진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킨다는 것도 마찬가지 이론인 거예요. 누드화는 예술적으로 변형되어 승화되지 않으면 추한 것이지요. 때문에 동물적이고 추한 섹스를 사랑이라는 묘약으로 승화시키고 정화시킬 수 있을 때, 섹스가 아름답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예요.”

강 교수는 어디에서 이런 이론을 정립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 신념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고, 그를 평생 지키려는 사도처럼 보였다. 경아에게 그런 강 교수는 매우 성스러운 수도자처럼 보였고, 그 때문에 강 교수를 존경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강 교수 역시 경아의 이런 순수한 모습을 좋아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는 잘 맞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만난 지 6개월이 지난 2월이었다. 강 교수는 부산에서 열리는 학술세미나에 발표자로 참석하게 되었다. 주말에 2박 3일 동안 부산에 머무르게 되었다. 입춘이 지나고 온천지에 봄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겨울 동안 움츠러들었던 만물이 소생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겨울은 그렇게 춥지 않았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눈도 별로 오지 않고, 그렇게 지나갔다. 강 교수는 일부러 자신의 차를 운전하고 부산까지 갔다.

최근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비행기를 타기가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고속버스나 고속열차를 타는 것고 찜찜했다. 그래서 힘이 들었지만, 스스로 자가운전을 하고 먼 길을 갔다.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면 참 기분이 좋다.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장시간 어디론가 향해서 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다.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한국이 참 넓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참을 달려도 산이 계속되고, 중간 중간에 크고 작은 도시를 지나게 된다. 가끔 넓은 들판도 눈에 띈다.

일본에 있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 사람의 친척 부부가 크루즈선을 타고 여행을 갔다가 요코하마에서 내리지 못하고 묶여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친척 부부는 70살 가까이 되었는데, 평생 처음으로 부부가 크루즈여행을 갔다가 신종 코로라 바이러스 문제로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벌써 일주일째 격리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배에 승선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감염자는 매일 늘어나서 지금까지 모두 174명이나 된다고 한다.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그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 지인은 강 교수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도대체 이렇게 비인도적인 정부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무조건 배에서 내리게 한 다음 특별조치를 취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 전화를 끊고 강 교수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인생이란 참 별 거 아니구나! 저런 일을 어느 날 갑자기 당할 수 있는 게 바로 인생이다.’라디오에서는 ‘Dust in the wind'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부산에 도착해서 호텔을 잡았다. 강 교수는 다른 세미나 참석자들이 주로 머무는 호텔을 피해 일부러 해운대에 있는 호텔을 예약해 놓았었다. 전염병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위축되어서 그런지 호텔도 무척 조용했다.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낮에 행사를 마치고 저녁 6시경 강 교수는 호텔로 돌아왔다. 운전도 장시간 했기 때문에 약간 피로를 느꼈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바에 들어가서 혼자 술을 마셨다. 8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경아였다.

“뭐하고 있어요?” “저녁 먹고 혼자 술 마시고 있어요?” “아, 그러세요. 저는 친구 전시회 때문에 부산에 와 있어요.” “부산에 왔어요? 나도 부산에 출장 왔는데, 지금 어디예요? 내가 그곳으로 갈게요.” “저는 지금 부산역에서 SRT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그 기차표 취소하고 기다려요. 내가 데리러 갈게요.”

강 교수는 택시를 타고 부산역으로 가서 경아를 데리고 호텔로 왔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두 사람은 술을 마시고 지금까지 서로가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오래 이야기를 했다.

강 교수는 술에 취했지만 일부러 방을 따로 잡아서 경아에게 혼자 자라고 했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이틀 밤을 같이 지내고 같이 강 교수 차를 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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