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아래에서

은행나무 아래 누워 하늘을 본다. 시원한 바람이 산허리를 감싸고 휘몰아 온다. 바람에 모든 걸 맡긴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구를 만나 어떤 모습을 보고 어떤 소식을 전하는 걸까?
하늘에는 별이 가득 차 있다. 별이 흐르는 아름다운 흔적은 어디에 남게 될까? 셀 수 없이 수많은 별을 보면서 운명과 인연을 생각해 본다. 우주에 하나의 점을 찍은 내 존재는 어떤 시간과 공간을 통해 확인되는가? 그 존재는 타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시키는 고리는 무엇인가?
내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 384번지다. 깊은 산골이다. 포천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세 개나 넘어간다. 지금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비포장길을 한참이나 달려야 했다. 여름에 장마가 지고 나면 도로가 울퉁불통 패여 힘이 들었다. 그런 길을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증조부님들은 걸어서 포천읍까지 다니셨다.
고개고개 넘어 다니던 그 길에 조상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땀을 흘리며 비바람을 맞고, 추위를 견디던 삶의 흔적이 배어 있다. 나는 그 길을 다니면서 옛날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해 본다. 길은 좁았고 가로등도 없었다. 고개를 넘을 때 캄캄해서 무서웠을 것이다. 산짐승도 많았을 것이다.
고향에는 마을 입구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몇백년 되었다는 이 나무는 마을 행사 때 커다란 그늘을 제공해 준다. 매년 8월 15일 동네 사람들이 모여 벌초를 한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한 여름에도 은행나무가 너무 커서 그런지 그 아래 있으면 더위를 견딜 만하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내게 은행나무는 왠지 모르게 정겹다. 내가 은행나무에 끌리는 건지, 은행나무가 나를 끌어당기는 건지 모른다. 가을에 은행잎을 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게 되고, 한 동안 눈을 떼지 못 한다. 운명적으로 은행나무의 영향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연히 네가 나타났다  (0) 2021.02.12
낮은 자리에 서면  (0) 2021.02.12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했다.  (0) 2021.02.12
작은 운명 (31)  (0) 2021.02.12
욕심이 죄를 짓게 한다  (0) 2021.02.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