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6)
통영은 눈썰미가 좋아서 호텔에 들어올 때 말을 건 여자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가 그 여자들이 호텔에서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갈 때, 다시 그 여자들에게 다가가 아주 정중한 자세로 말을 건다.
”아! 사모님, 아까 뵙던 분이네요. 제가 재미교포로서 한국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데, 혹시 차 한잔 대접하면서 좀 여쭤보면 안 될까요?“
그러면 열명 가운데 아홉사람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미안합니다. 바빠서 죄송해요.“라고 그냥 간다.
”예.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모님!“
이런 일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의외로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게 세상 이치다. 어떤 목표를 세우고, 피나는 노력을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약간 다른 의미지만,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도 있다.
통영이 외제차를 타고 온 여자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차를 한 잔 하자고 제안을 하면, 개중에는 아주 드물게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여자도 있다. 그런 여자들은 어떤 여자인 것인가?
예를 들면, 이렇다. 모처럼 친구를 만나서 호텔에서 점심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수다를 떨려고 마음 먹고 광내고 때빼고 왔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호텔로 오던 도중 갑자기 아주 긴급한 일로 약속을 취소하는 경우가 있다.
호텔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여자는 맥이 빠진다. 물론 친구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공연히 기분이 나빠지고 짜증이 난다. 갑자기 스케줄이 망가졌고,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날씨는 화창한 봄날씨라 다시 집에 들어가 틀어박혀 있기도 싫다. 마침 남편은 지방 출장을 가서 오늘은 밤늦게까지 놀아도 되는 찬스인데 너무 아깝다. 가뜩이나 요새 남편과도 냉전 중이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카톡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을 몰래 학인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능력 있는 남편은 돈을 팍팍 그 여자에게 쓸 것이 뻔하다.
이런 심리상태에서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키가 크고, 잘 생긴 젊은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서툰 말씨를 보니 본인 말대로 재미교포로서 미국에서 오래 살다 한국에 온 한국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 같다.
그리고 이곳은 경비가 철저하게 보장되어 있는 한국 고급 호텔의 대낮이다. 미쪄야 본전이므로 같이 커피 마시는 것에 동의한다. 게다가 낯선 남자가 호텔에서 비싼 커피를 사겠다는데 모든 것이 오케이다.
여자는 차라리 약속을 깬 여자 친구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렇게 해서 여자는 통영과 로비라운지에서 비싼 커피를 마신다. 남자는 웨이츠레스에게 커피를 주문할 때로 발음이 딱딱하게 ‘꺼삐’라고 하지 않고, 아주 부드럽게, ‘커~휘~’라고 원어민처럼 발음했다.
완전히 미국 사람이었다. 영어를 읽는 것은 되지만, 회화는 전혀 자신이 없는 여자는 남자 앞에서 영어발음에 관해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면서 자신은 한국식으로 ‘아메리까노’라고 조용히 말한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8) (0) | 2021.02.24 |
---|---|
작은 운명 (7) (0) | 2021.02.24 |
따뜻한 봄이 오면 (0) | 2021.02.24 |
부부나 연인 사이에 갈등이 있는가? (0) | 2021.02.24 |
짙은 검은색 안경을 쓰고 보면 모두 어둡게 보인다. (0) | 2021.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