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8)
통영은 여자에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신은 나이가 드니까 고국이 생각나서 아버지 승낙을 받아서 일단 미국 돈으로 천만 달러, 그러니까 한국돈으로 100억원 정도를 가지고 한국에서 관광호텔사업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스코틀란드에서는 바닷가나 호숫가, 그리고 깊은 산속에 환상적인 호텔이 많아요. 큰 돈은 벌지 못해도, 저도 한국에서 그렇게 경치 좋은 곳에 아주 크지 않은 호텔을 정말 멋있게, 예쁘게, 고급스럽게 짓고 싶어요. 사람들은 양수리가 좋다는데, 한번 가볼까 하고요. 그런데 미국에서 나올 때 주변 사람들이 한국에는 사기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절대로 사업 이야기는 모르는 남자들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도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에 한국 사기꾼에게 전 재산을 날리고 빈손으로 갔다고 했어요. 그래서 이런 호텔 사업이야기는 저 혼자 은밀히 진행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모님은 인상이 참 좋으셔서 믿어도 될 것 같아요.”
여자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 많은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이렇게 괜찮은 남자를 알게 되다니! 오늘은 행운이 닥친 날이다. 이런 날에는 로또를 하나 사도 될 것 같았다. 여자는 점점 통영의 말에 빨려들어간다. 통영은 여자에게 물어본다.
“혹시 폭풍의 언덕 읽어보셨어요?” 여자는 소설 제목은 언젠가 들어봤지만, 그런 소설을 읽을 시간은 없었다. 누가 읽어보라고 권하는 사람도 없었다. 드라마는 수없이 봤지만, 특별히 소설을 사서 본 기억은 별로 없었다.
“아직 안 읽었어요.”
“예. 폭풍의 언덕은 제가 대학교에서 영국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영어로 된 원서로 1년 동안 수십번 읽었던 영국 소설이예요. 지극히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아름다운 소설이예요. 저는 대학생 때 그 소설에 빠져 지금까지 결혼도 하지 못하고 혼자 살고 있어요. 언제 한번 시간 나시면 읽어보세요. 한국에도 번역되어 나왔다고 하는 말을 들었어요.“
그러면서 통영은 폭풍의 언덕 스토리를 청산유수로 설명해준다.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사랑에 관한 명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해준다. 감동적이다.
통영은 사기를 치기 위해 한국말로 번역된 ‘폭풍의 언덕’을 수십번 읽었다. 영어로 된 소설은 구경도 못했다. 하도 많이 읽어서 몇 페이지에 어떤 대사가 나오는지 다 외우고 있었다.
특히 여자들에게 써먹는 부분은 사실 몇 군데 되지 않았다. 많아야 20군데 정도였다. 그러면서 슬픈 장면 부분에서는 가볍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제스처도 보였다. 여자는 감동을 받으면서 통영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약간 분위기기 지루해질 때가 되면, 통영은 먼저 서둘러 일어나자고 한다.
“오늘 미국 대사관 사람들과 약속이 잡혀 있어요. 미안합니다. 먼저 일어날 게요.” 여자는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그렇잖아도 오늘 선약은 취소되었고, 할 일도 없는 터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러세요.”
“예. 제가 다음에 상의하고 싶은데 연락을 드려도 될까요?”
“예. 괜찮아요.” 이런 방식으로 상호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