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7)
통영은 우선 자신은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고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 불안하고 두렵다고 했다.
“저는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지금까지 살았어요. 샌프란시스코에서 두 시간 떨어진 교외에서 살고 있는데, 대학은 버클리에서 영국문학을 전공했지요. 아버지는 미국에서 고생을 많이 하시다가 석유관련사업을 해서 준재벌이 되었어요. 나중에 아버지는 스코틀랜드에 가서 관광호텔사업도 했어요. 스코틀랜드에 엄청난 투자를 했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정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스코틀랜드 공작(公爵)’ 작위를 수여받았어요. 저도 아버지를 따라 스코틀랜드에 가서 사업을 같이 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정부에서는 저에게도 ‘스코틀랜드 백작(伯爵)이라는 작위를 수여했어요.”
여기까지 매우 서툰 한국말로 설명하면서 통영은 매우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어려운 영어로 공작이나 백작 같은 것은 단어를 발음하는데, 특히 ’R과 L‘ ’P와 F‘를 특별히 구별하여 발음하는 것이었다.
여자는 통영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마치 자신도 지금 한국이 아닌 유럽의 어떤 나라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관광호텔 로비라운지에 와 있는 것같은 묘한 착각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여자는 자신의 남편의 단점이 아주 뚜렷이 뇌리속에서 부각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남편은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 집에서 책을 한 권 보는 것을 보지 못했다.
TV 채널은 수백가지가 되고, 외국 방송도 많은데 남편은 오직 순한국방송만을 고집했다. 그것도 뉴스 같은 것은 재미 없다고 보지 않고, 주로 스포츠 중계, 연예가 중계, 개그프로에 집중했다.
월드컵이나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는 거의 24시간 TV를 끼고 살았다. 메달을 따는 한국 선수, 외국 선수의 프로필까지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복잡하고 처음 듣는 경기 용어, 경기 규칙 같은 것에 대해서도 거의 스포츠전문해설자 이상의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잘 모르는 것은 반드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찾아보고 확인하는 열성을 보였다. 심지어 노트를 한 권 사서 필요한 것은 메모까지 하고 가끔 들춰보기까지 했다.
남편은 술을 좋아해서 중요 경기가 있으면, 반드시 치맥을 시켰다.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에 생맥주를 2천씨씨를 주문했다. 그리고 먹다가 생맥주가 부족해지면 집에 있는 캔맥주를 연속해서 땄다.
한국팀이 우승하면 남편은 마치 그날 먹은 치맥값을 공짜로 먹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경기 내내 부인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경기 흐름을 놓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부인을 쳐다보는 유일한 시간은 치킨배달원이 왔을 때, 부인보고 가져다 상을 차려달라고 할 때와 중간에 화장실에 갈 때뿐이었다.
부인은 그럴 때 하는 수 없이 보고 싶은 드라마도 보지 못하고, 그렇다고 같이 술을 마시고 일찍 잠이 들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하고 한심했다. 부인은 이것을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 전에 가수 박재란이 부른 ‘님’이라는 트로트 노래에 나오는 가사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늦은 시간에 배달온 젊은이도 중요한 경기를 봐야 할 텐데, 돈이 없어 경기도 보지 못하고, 편하게 집에서 경기를 보고 있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구나 하는 인간적인 동정심을 느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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