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1)

맹사장은 구치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을 때에는 미결수였다. 그러나 재판이 대법원까지 가서 끝이 나고 확정되자. 기결수가 되었다. 그래서 구치소에서 다른 교도소로 이감이 되었다.

10개월 가까운 기간, 머물면서 익숙해진 곳을 어느 날 갑자기 떠난다는 것은 무척 서운한 일이었다. 사회에서 이사를 하는 것과 달랐다. 이사를 하게 되면, 사전에 어느 곳으로 갈 곳인지 결정하고 미리 이사갈 곳을 둘러본 다음 거처를 구하고 이사를 한다.

그런데 감방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재소자는 자유의사가 완전히 통제된다. 교도관이 명령하는 대로 동물처럼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채 차에 실린다.

다만, 화물칸에 실리는 것이 아니라, 좌석이 있는 버스에 실리는 것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유리창도 없는 버스안에서 차창밖을 볼 여유도 없이 어디론가 옮겨간다.

아주 낯선 교도소에 들어가 점검을 받은 다음 똑 같은 입감절차를 거쳐서 머물 방실이 결정된다. 새로운 수감번호가 가슴에 적힌다. 지금까지 수십년동안 이어온 번호의 주인공이 된다.

맹사장이 지금 부여받은 이 번호, ‘303’을 이 교도소에서 가슴에 차고 있었던 사람들은 출소한 다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모두 남자였을 것이다.

그 중에는 힘든 세월을 교도소에서 신음하다가 교도소 문밖으로 나갔다가, 일부는 다시 들어왔을 것이다. 대부분은 아픈 기억을 가슴에 품은 채 또 다시 힘든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한많은 이 세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이사를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기야 이미 죽었다면, 그는 더 이상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이사를 한 영혼’이라고 해야 맞다.

‘사람과 영혼’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 ‘호흡의 정지’ ‘심장 박동의 정지’라는 경계가 있다. 이러한 표지로 두 존재는 구별된다. 맹사장은 생각했다.

지금은 자신이 살아있지만, 자신이 죽으면, 죽은 다음 자신의 영혼은 이 번호를 기억할 수 있을까? 자신의 육체에 붙여지고, 자신의 이름 대신 불리웠던 이 번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자, 맹사장은 갑자기 슬퍼졌다. 갑자기 무기력해지며, 허무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것도 또 새로운 스트레스였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교도관도 바뀌었고, 재소자들도 바뀌었다. 감방의 벽도 촉감이 달랐다.

오직 달라지지 않는 것은 인간의 눈빛, 무감각하고 무표정한 눈빛, 사랑이라고는 눈꼽만치도 남아있지 않는 눈빛만이 똑같이 사방에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낮이고, 밤이건, 맹사장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며 주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맹사장은 주눅이 들고,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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