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5)

“나는 비록 감방에 갔다 왔지만, 지금은 정말 바르게 살고 있어. 하기야 내가 감방에 간 것도 사실은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거였어. 나를 고소한 사람이 검사와 짜고 나를 집어넣은 거였어. 하지만 나는 그런 검사나 고소인을 원망하지 않아. 모든 게 내 탓이고, 내 잘못이었다고 생각해. 객관적으로 오해 살 일을 했던 건 결국 나였으니까. 이제는 정의의 사자로 변했어. 낵 볼 때 경우가 나쁘거나 사악한 인간에 대해서는 절대로 참지 않아. 알았짐?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들어. 명훈네로부터 돈은 내가 받아줄 게. 1억 원은 받아줄 거야. 그 이상 더 욕심 부리면 큰일 나. 지금 TV를 봐. 돈 많은 재벌들도 더 욕심 부리다 감방 가잖아. 평새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이 늙어서 경로당 가서 장기나 두고 있으면 편하게 여생을 보낼텐데 장관이나 비서실장인가 뭔가 하다가 또 감방 가 있잖아. 다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다가 패가망신하는 거야. 그러다가 감방 가서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 얼마나 어리석을까? 그러니까 은영씨는 그러지 마. 내가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라 아끼고 싶어서 이런 충고를 하는 거야. 나와 아무런 관계 없으면 나같이 바쁜 사람이 미쳤다고 이렇게 만나서 시간 낭비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겠어.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거야. 알았지. 3일의 여유를 줄테니까 나에게 연락해 줘.”

은영은 정말 기가 막혔다. 감방까지 갔다왔다는 전과자가 무슨 주제에 저렇게 근사한 말을 늘어놓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은영과 명훈 사이의 사랑 문제이고, 배 안에 들어있는 아이의 문제인데, 박기사가 마치 정의로운 검사처럼 공갈을 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은영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그리고 박기사가 명훈 아빠의 기사로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은영의 과거를 폭로하고, 결국 명훈과의 관계를 파탄시킬 핵폭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영은 일단 며칠 간 생각한 다음 박기사에게 알려주겠다고 말하고 헤어졌다.

한편 명훈 아빠는 계속해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시청 건축과장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에 대해 추궁을 받았다. 명훈 아빠가 최 과장과 자주 만나고 식사를 한 사실과 명훈 아빠가 객관적으로 허가를 받기 어려운 장례식장 건축허가를 받은 사실에 대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제보를 한 것이었다.

검찰에서 명훈 아빠 회사를 특별수사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변 사람들은 이때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추가로 제보를 하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남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이 망하는 것을 은근히 속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장관이 되거나 국회의원이 되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아는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구속되어 구치소로 향하는 뉴스가 나오면, ‘저렇게 잘난 척하더니 잘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명훈 아빠와 건축과장을 둘러싼 많은 의혹에 관한 제보는 받았지만, 막상 검사가 당사자들을 조사해보니 두 사람 모두 완강하게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사 입장에서는 제보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고 확실해서 강한 심증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런 상태에서 물러설 수 없었다.

검사는 두 사람의 핸드폰 통화내역과 은행계좌 거래내역, 건축허가 관련 서류 등을 모두 압수하여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더 나아가서 최 과장이 처리한 건축허가건을 모두 의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았다.

특히 민원이 많은 장례식장에 대해 왜 건축허가를 내주었는지에 대해 허가과정을 뜯어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서류상 명백하게 드러난 잘못에 대해서는 허위공문서작성죄 등을 걸어서 형사입건해 놓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건축과장이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상당히 많은 뇌물을 받았을 것이라는 혐의를 두고 강도 놓은 수사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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