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8)

명훈은 학교를 다니고는 있어도 정신이 없었다. 강간사건도 해결되지 않았고, 은영이 아이도 수술하지 않고 있었다. 집에서는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빠가 검찰청에 왔다갔다 하면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명훈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은영이 문제는 엄마가 쉽게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는데, 아직 아무런 진전이 없다. 은영 문제에 대해서는 명훈은 아무런 죄의식이나 책임의식이 없었다.

‘요새가 어떤 세상인데, 몇 번 연애를 한 것 가지고, 여자가 비겁하게 남자 모르게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를 가지고 공갈을 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은영은 정말 나쁜 여자다. 그냥 아이를 낳아서 키우든가, 낙태를 하든가 알아서 할 일이다.’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로 생각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은영이 나쁜 것이고, 자신은 억울한 피해자였다. 정말 재수가 더럽게 없어 이런 거지 같은 여자애를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때 가임기라 은영이 임신을 한 것은 백만불의 일의 확률로서 명훈에게는 맑은 하늘에 벼락을 맞고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불행한 사건이었다.

강간사건도 정말 술에 취해서 실수한 것인데, 하필이면 나이 많은 가정 주부가 어린 애들 노는 클럽에 와서 어린 애들 행세를 하다가 나한테 걸려서 강간을 당했다고 하니 이것은 더 미칠 노릇이었다.

명훈이 그동안 만났던 여자들은 지금 생각해 보니 모두 천사였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런 줄 알았다. 서로 즐기고 놀고, 쿨하게 헤어질 줄 아는 서구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인 여자들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는 일부 못난 여자들이 돌연변이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나 세상을 어지럽히고, 착하고 순진한 명훈이 같은 남자들을 괴롭히고, 이용해 먹고 돈을 뜯으려는 것 같아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정명훈씨지요? 경찰선데요. 귀하는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경찰서로 와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3일 후에 경찰서로 신분증을 가지고 출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요새 보이스피싱이 많아 경찰서라고 사칭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대요. 저는 강간한 사실이 없어요. 전화 끊어요.”

명훈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자신이 모텔에 가서 나이 많은 여자와 성관계를 하려고 했던 사실은 있으나, 그것은 분명 강간죄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경찰관이 전화를 걸어 분명히 명훈이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다고 하니 이것은 분명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수법으로서 어떤 나쁜 사기꾼이 돈을 뜯어내려는 수법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명훈은 단호하게 자신은 강간을 한 사실이 없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것이다. 그런데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관에게서 출석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엄마, 경찰서에서 이런 문자메시지가 왔어요. 보이스피싱 같아요.”
명훈 엄마는 크게 놀랐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올 것이 왔구나! 큰일 났네.’
명훈 엄마는 문자메시지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거기 OO 경찰서지요? OOO 수사관님 계세요? 저는 정명훈의 보호잔데요.”
“예, 정명훈씨가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3일 후에 OO경찰서로 출석하도록 해주세요. 보호자도 같이 와도 좋습니다. 틀림없이 출석해야 합니다. 만일 출석을 거부하면 체포장이 발부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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