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6)

복자는 3개월이 지난 다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서 아이 아빠인 그 유부남을 찾아갔다. 변호사와 상의해서 아이를 유부남 딸로 올리겠다고 했다. 유부남은 크게 놀라면서 복자를 달랬다. 그러면서 위자료로 5천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복자는 그 돈을 받고 아이는 유부남 앞으로 올리지 않고, 그냥 영아원이나 고아원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복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그래서 식당에 취직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복자의 생모가 나타났다. 복자는 생모인 김춘화(여, 55세)를 만나서 한없이 울었다. 복자는 생모를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생모는 유방암에 걸려서 위독한 상태였다.

유방암을 뒤늦게 발견했고, 이미 다른 곳에 전이가 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춘화는 죽기 전에 자신의 딸을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수소문해서 복자를 찾아낸 것이었다.

춘화는 지방에서 부모님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가 나이 스물세살에 친구와 함께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시골생활이 무료했고, 시골에서 첫정을 주었던 남자 친구가 춘화를 데리고 놀다가 차버리고 춘화와 가까운 여자 친구와 애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겸사겸사해서 세상 물정을 잘 알고 있는 여자 친구와 둘이 의기투합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직장을 구해 자유롭게 생활하고 시골의 남자 친구를 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부모님들에게 말하면 절대로 승낙할 것 같지 않아 몰래 가출을 한 것이었다. 춘화는 가지고 온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던 중 술집 구인광고를 보고 잘못 찾아갔다가 인신매매단에 걸려 청량리 윤락가로 팔려갔다.

같이 올라갔던 여자 친구와는 그때부터 연락이 두절되었다. 당시만 해도 전국적으로 윤락가가 공공연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인권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았다.

가장 커다란 문제가 바로 윤락촌이었다. 윤락촌의 실상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으로 임권택 감독이 1997년 제작한 영화, <노는 계집 창>이 있다. 이 작품은 산업화의 뒷전에 밀려 여자들이 윤락촌에서 집단으로 몸을 팔아 먹고 사는 비참한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윤락여성들의 인권은 전혀 없었다.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했다. 조직폭력배나 악덕 포주들은 직업소개소와 짜고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젊은 여성을 창녀촌에 팔아넘기고, 일단 창녀촌에 들어가면 감금상태에서 깡패 건달들의 감시를 받아 몸을 팔아야 했다.

매일 수많은 남성들과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해야 했고, 성병에 감염되고, 술과 담배, 마약에 빠져 건강을 해쳤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포주들의 그물에 걸려 소개비, 방값, 식대, 의상비, 선수금이나 차용금에 대한 고리의 이자 등의 명목으로 시간이 갈수록 빚만 늘고, 끝내 나이 들어 더 이상 일을 못하고 병들면 그때서야 악마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춘화는 서울로 올라와서 우연한 기회에 악질들에 의해 강제로 윤락녀가 되었다. 몸을 다 망치고, 닭장에 갇힌 비참한 신세가 되어, 뭍남성의 성노예가 되었다. 성병에 걸리고, 몇 차례 임신중절수술도 했다. 숱하게 얻어맞기도 했다.

춘화를 보호해준다는 기둥서방 같은 놈이 붙어있기도 했다. 윤락촌에서 도망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죽을 정도로 맞기도 했다. 춘화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신음해야 했다. 그렇게 13년 동안 윤락녀로 생활했다.

나이가 34살이 되어 어느 정도 쓸모가 없어지자, 포주는 약간의 자유를 허용했다. 그때 윤락촌 밖에 있는 커피숍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연애를 하고, 춘화는 포주와의 채권채무관계를 정리하고 그 남자와 동거생활을 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어떻게 춘화는 그 남자의 아이를 낳았다. 춘화는 딸을 낳고, 그 남자의 사랑을 받게 되어 이제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의 돌이 되던 날, 간단하게 돌잔치를 조촐하게 하고 있는데, 그 남자의 부인이 나타나서 춘화를 짓밟았다. 당시 간통죄가 있어 춘화는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 있다가 고소취소로 한달 만에 석방은 되었지만, 그 남자와 헤어지고, 그 남자의 강요로 딸은 영아원에 넘겨졌다.

그후 춘화는 혼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생활하다가 암에 걸리게 되었고, 그래도 딸을 보지 않으려고 하다가 마지막으로 딸을 찾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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