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주관성, 불균형성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상대가 아무리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것은 가슴을 떨리게 하거나, 사랑 때문에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내가 상대를 더 좋아하고, 상대가 다소 나에게서 거리를 두고 냉정을 유지할 때 가장 뜨거워진다. 불타는 정열이 발동해서 사람을 마비시키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나는 전화를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여느 때보다도 더 나를 불안하게 한다. 뭔가를 해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방 안을 왔다갔다해 본다.
때로 섬광 같은 순간에 나는 잠에서 깨어나 내 추락을 뒤엎는다. 불안에 떨며 기다리노라면, 갑작스레 하나의 힘찬 문장이 내 마음속에 떠오른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무얼 하는 걸까?” 그때 현실유리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131 ~ 137쪽에서 -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는 시간은 공허하다. 그 공허함은 현실을 모두 유리시킨다. 나는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방랑자의 처지가 된다. 낯선 도시에 혼자 남아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황량한 도시의 바람을 맞으며 혼자 술을 마신다. 사랑은 아무 곳에도 없다. 오직 이기적인 인간의 차가운 냄새만이 거리를 휩쓸고 있다. 서로를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시뻘건 눈동자들이 오늘도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다.
사랑은 기다림이다. 진한 기다림이 사랑의 속성이다. 오래 참고 기다려야 사랑은 이루어진다. 절대로 조급해 해서는 안 된다. 조급함은 사랑을 익기도 전에 떠나보내게 된다.
<고대의 카리스(charis)란 말의 의미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내 욕망에 몸을 내맡길지도 모른다는 상념을, 희망을 덧붙여 본다. 카리스라는 말은, 눈의 광채, 육체의 빛나는 아름다움, 욕망하는 대상의 광휘를 뜻한다.
일생을 통해 나는 수백만이 육체와 만나며, 그 중에서 수백 개의 육체를 욕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백 개의 육체 중엣 나는 단지 하나만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내 욕망의 특이함을 보여준다.>
- 롤랑 바르트 지음, 사랑의 단상, 김희영 옮김, 38~40쪽에서 -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매력은 매우 주관적이다. 그런 주관성 때문에 항상 사랑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그래서 사랑하는 대상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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