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9)
이 남자의 사건을 담당했던 홍 검사는 그 당시만 해도 피고인인 남자는 틀림 없이 성추행을 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피해자가 당하지도 않은 성추행을 현장에서 범인을 붙잡아 신고를 하고, 계속해서 자신이 당한 피해사실을 진술할 리는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란 다 그렇게 성추행을 해놓고도 명백한 물적 증거가 없으면, 범행을 부인하는 습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홍 검사가 법을 공부하거나 판례를 보고서 얻은 것은 아니었다. 검사로서 많은 성추행, 강간 등과 같은 성범죄를 수사하고, 재판에 관여하다 보니 얻게 된 경험칙이었다. 하지만 실제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법이 불완전하고 위험한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진술에 의존해서 재판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그리고 그런 기억에 기초한 진술은 부정확할뿐더러, 때로는 구체적인 사건에게 이해관계에 따라 허위 또는 과장된다. 허위고소, 허위증언이 현실적으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검사나 판사가 어떤 형사사건에서 피의자에 대한 유죄심증을 가지는 것은 그야말로 제한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선입관이나 경험에 기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 검사가 이번에 본의 아니게, 술집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려서 조사를 받게 되니, 성추행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그 남자가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홍 검사는 요새 자신의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데, 먼 친척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법률상담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홍 검사는 하는 수 없이 그 여자를 만났다. “남편이 바람이 나서 이혼을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아니, 잘 사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이혼을 하자고 해요?”
“남편이 동네에서 배드민턴을 치러 다니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여자와 붙어서 도저히 헤어질 수 없다고 하면서, 나와는 이혼을 하지고 그래.”
맹순은 홍 검사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하소연했다. 맹순의 남편은 56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30살에 맹순과 결혼해서 아이를 둘 낳았다. 결혼할 때 맹순은 27살이었는데, 지금 남편 친구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런 맹순을 지금의 남편인 공국이 삼각관계를 맺고 들어와서 빼앗았다. 그 때문에 공국과 맹순의 애인은 심한 몸싸움까지 했다. 자신의 애인을 빼앗긴 맹순의 애인은 분노심에 불타서 공국을 맥주병을 깨서 팔을 찔렀고, 그로 인해 구속까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공국은 끝내 맹순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맹순의 애인은 맹순을 포기하고 말았다. 맹순이 물론 전 애인과 육체관계가 있었던 사실도 다 알고 있었지만, 공국은 자신의 눈에 딱 맞는 이상형이라면서 맹순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아꼈다.
공국은 결혼하고 건설회사에 다니면서 한 눈을 팔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면서 자녀들을 키웠다. 맹순 역시 결혼한 다음에는 오직 가정에만 헌신했다. 공국은 55세가 되던 해에 오래 다니던 건설회사에서 그만 두었다.
다니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났고, 사장은 회사 비자금을 횡령하고 탈세를 한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자살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공국은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실업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매일 술이나 마시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동네에서 작은 치킨집을 하나 차렸다.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대출 받은 자금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치킨집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이 6개월이 지나자 치킨집은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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