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8)
복자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술에 취해 곧 바로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스텔라는 바로 나올까 하다가 복자가 너무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싶어서 거실 쇼파에 기대어 있다가 스텔라도 잠이 들었다. 스텔라가 약 30분쯤 잠에서 깨어나 보니, 복자는 어디가 아픈지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가서 보니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스텔라는 복자의 집안을 구경했다. 안방에는 어떤 50대 중반의 여자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누가 그렸는지, 어떤 남자의 초상화가 있었다. 그 초상화는 화가가 그린 것이 아니고,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았다.
스텔라가 보니, 복자가 쓰고 있는 일기장이 있었다. 안방 화장대 위에 쓰던 일기장이 펼쳐져 있었다. 스텔라는 호기심 때문에 그 일기장을 거실로 가지고 나와서 읽어보았다. 복자는 고아원에 있을 때부터, 그때까지 계속해서 일기를 써왔다.
매일 쓴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써놓았다. 길게 쓴 것은 아니었다. 대개 10줄 정도 간단하게 중요한 일을 써놓았다. 일기의 내용을 보니 고아원에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고생을 많이 했다.
다만, 지금의 남편인 국홍을 만나서 얼마나 행복했는지에 대해서는 과거와 달리 많은 양을 써놓았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원망도 많았다. 늦게 만난 친엄마, 김춘화에 대한 감정, 느낌도 많았다.
그러다가 친엄마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방암으로 돌아가신 이야기를 읽을 때, 스텔라는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국홍이 강간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면회를 다니면서 느꼈던 심정도 상세하게 되어 있었다.
끝 부분에 보니, 복자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써있었다. 이 부분에서 스텔라는 심장이 멎는 듯 싶었다. 노트 맨 뒤에 편지지 세장이 끼여있었다. 복자가 최근에 써놓은 유서였다.
유서의 내용은 그동안 고아로 고생한 이야기, 남편을 만나서 행복했던 이야기, 그리고 남편이 구속되고 술집이 망한 이야기, 자신이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 더 이상 세상을 살 자신도 없고, 살 용기도 없다는 이야기, 다만, 남편이 석방되면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너무 불쌍한 여자다. 내가 도와주어야겠다.’ 스텔라는 복자가 일어날 때까지 쇼파에 누워서 잠을 잤다. 아침에 복자가 스텔라를 깨웠다. “아가씨. 미안해요. 제가 너무 술을 많이 마셔서 실수를 했어요. 라면이라도 끓여줄게요. 요새 정신이 없어서 쌀을 못샀어요. 미안해요.”
“그래요. 라면 끓여 같이 먹어요. 제가 할게요. 그런데 안방에 걸린 사진은 누구 사진이예요.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초상화는 또 누구 거예요?”
“아! 제 친어머니 사진이예요. 그런데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남자 그림은 제가 아버지를 그린 거예요. 저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제가 친어머니를 만났을 때에도 어머니 역시 아버지 사진을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께 아버지 얼굴에 관한 설명을 듣고, 상상해서 그린 거예요. 말하자면, 몽타주(montage) 같은 거지요. 하하.”
"언니는 정말 그림을 잘 그리세요. 사진 찍어놓은 것과 아주 똑같아요.“
스텔라는 복자가 직접 그렸다는 아버지 초상화가 실제로는 초등학생 수준이었지만, 일부러 기분 좋게 해주려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사실 나도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림을 좋아했어요. 커서 피카소 같은 화가가 되려고 했어요. 피카소까지는 못 되어도, 천경자 정도는 되려고 했는데, 고아원 원장님이 그림 그릴 도구를 사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내가 그림 소질이 없다고 구박을 주어서 포기했지요.”
스텔라는 복자의 일기장을 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같이 라면을 먹고, 스텔라는 밖으로 나왔다. ‘저 불쌍한 여자를 도와줄 거야. 그리고 남편도 석방되도록 내가 할 일을 해야지. 가장 중요한 것은 저 여자가 자살하지 않도록 내가 곁에 있어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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