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2)
인경이 그 일로 인해 회사를 그만 두자, 사장은 퇴직위로금조로 인경에게 더 천만원을 주었다. 인경은 아무 말없이 그 돈을 받았다. 일단은 인경의 형편에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미 당한 일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잊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일은 두고 두고 극심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인경의 어머니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사고를 당한 지 4개월이 지나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런지 아버지도 몇 달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인경은 22살의 나이에 완전히 고아가 되었다. 세상이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 친척도 인경을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인경은 이런 저런 역경을 겪으면서 단단해졌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을 누구도 믿지 못하는 병이 생겼다. 그래서 혼자 열심히 직장에 다니면서 일을 하고 조용히 살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남자들이 끊임없이 인경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는 진실성이 없었다. 장난 비슷하게 연애나 하자는 남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인경이 싫어하는 육체관계만 원하는 것이었다.
인경은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카페에 취직을 했다. 커피를 열심히 공부해서 상당한 수준이 되었다.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카페에 취직을 해서 열심히 일을 한 결과 그 카페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카페 주인 아들이 인경을 유혹했다.
너무 집요하게 매일 카페에 나와서 일을 도와주는 척 하면서 잘 대해주니까 인경이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그 주인 아들과 연애를 했다. 그 남자는 미국에서 오래 공부를 하고 돌아온 건달이었다. 그런데 인경 앞에서는 아주 진실한 남자인 것처럼 위선과 가식으로 일관해서 인경은 괜찮은 사람으로 믿었다.
결혼까지는 약속하지 않았지만, 인경 역시 카페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그 아들을 사랑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는데, 어느 날 그 아들의 부인이 나타나서 인경의 머리채를 잡았다. 왜 유부남을 꼬여서 가정을 깨뜨리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인경은 억울했다. 그 남자는 워낙 동안으로 어려보였고, 결혼한 유부남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남자는 늘, “나는 결혼할 생각은 아직 없어요. 커피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예요.” 이렇게 말하면서 밖에서 자고 들어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물론 인경과 외박을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지만, 친구들과 클럽을 다니면서 외박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 꼴이었다.
인경은 그렇게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비행이 탄로나자, 부인에게 각서를 써주었다. “본인은 가만 있었는데, 인경이라는 여자가 먼저 나를 유혹해서 하는 수 없이 넘어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인은 인경과 딱 세 번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인경이라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한번 더 만나면 이혼을 당해도 좋습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영은 기가 막혔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경도 그 남자의 부인에게 각서를 써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이를 거절했다가는 즉시 부정행위에 대한 위자료조로 인경이 지금 살고 있는 원룸의 보증금이 가압류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의 부인은 이미 그 남자로부터 인경의 주민등록번호와 주민등록지, 원룸의 보증금까지 소상하게 개인정보를 파악해 놓고 있었다. 인경은 하는 수 없이 각서를 써주었다. 각서의 내용은 그 부인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썼다.
“본인은 가만히 있는 남편 OOO씨를 유혹해서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본인은 카페에서 사직하겠습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OOO씨를 만나지 않겠습니다. 만일 앞으로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직접 만나게 되면 1회당 100만원의 손해배상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서명을 한 다음 지장을 찍어주었다. 그 부인은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여러 번 이런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경은 정말 억울했다. 사람을 잘못 본 죄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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